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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 序

지난 글 #1 철도통계의 맹점

지난 글 #2 국가별 통계 A

지난 글 #3 국가별 통계 B

지난 글 #4 도로와의 비교

지난 글 #5 동력의 집중과 분산

지난 글 #6 동력집중은 그만

지난 글 #7 관절대차 문제

지난 글 #8 고속선-재래선 혼용

지난 글 #9 비용편익분석 A

지난 글 #11 디젤기관차의 위기


아직은 경부선, 동해남부선, 호남선, 전라선 및 경전선 계통에 한정되어 있지만, 이제 국내의 장거리 고속교통수단의 대표주자가 고속철도인 점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 있어요. 게다가 경부선 및 호남선 계통에는 KTX는 물론 SRT도 운행되고 있어서 고속철도가 사실상 경쟁체제로 운영되고 있기도 해요. 이것은 여전히 철도관련에서 부족한 점이 많은 한국의 교통사정에서 일단 고무적인 일로 평가해야겠죠.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철도시스템이 바람직한 형태로 바뀌어 있는가를 반문해 보면 긍정적인 답을 내릴 수는 없어요. 왜 그럴까요?


이미 서두에서 짤막하게 언급했듯, 고속철도는 국내의 장거리 고속교통수단의 대표주자예요. 그러기에 단거리 또는 고속을 요하지 않는 교통수요를 고속철도로 커버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없음은 명백해요. 즉 고속철도는 만능의 교통수단이 될 수 없고, 어차피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닌 만큼 고속철도에만 기대서도 안되겠죠. 게다가 고속철도는 운송단가가 매우 높은 교통수단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되겠죠. 그래서 교통수요 충당에 KTX가 만능의 도구라고 봐서도 안될 거예요. 그런데 실상은 어떨까요?


여기서 사례연구를 해 볼까 싶어요.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을 둘러싼 논란, 그리고 그 대안으로서의 세종역(가칭) 건설에 대한 잡음.

2017년 8월 6일에 올라온 조선닷컴 기사를 보기로 해요.

그리고 해당지역의 지도는 별도로 본문에 첨부해 두겠어요.

2017080401716_1.jpg

(이미지 출처 - 상기 기사링크와 동일, 저작권자 조선닷컴)


기사내용에 드러난 문제점을 간단히 요약해 보죠.

어차피 고속도로로는 답이 안 나오니까 KTX 역을 신설해서 서울-세종 교통수요를 해결하자는 것인데, 대안에도 문제가 많다 보니까 이렇게 반문하게 되네요.

  1. 철도는 KTX밖에 없나?
  2. 철도를 더 만들어야지 역만 자꾸 만들어서 어쩔 것인가?
  3. 왜 자꾸 정치논리를 앞세우는가?
  4. 철도역은 공항이 아닌데?


위의 네 반문에 대해 자답해 볼께요.

우리나라의 간선철도시스템은 일단 수도권과 대전충남권이 사실상 1계통인 것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요. 고속선과 재래선이 엄격히 분리되어 있지 않은데다 재래선의 경우는 용산-천안 구간에는 서울/용산착발 모든 여객열차가 운행되고 있고, 천안-신탄진 구간에는 도중에 서울-제천간 열차가 1왕복 빠지는 이외에는 경부선, 경전선, 호남선, 전라선 계통의 모든 여객열차에 더해서 조치원-대전 구간에는 대전-제천간 열차들이 추가되기에 선로용량을 늘리고 싶어도 한계에 닿아 있는 상태가 일상화되어 있어요. 해당 구간에서 사고가 나면 그 뒤는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이 일어나는 건 시간문제. 당장 작년 3월 11일에 발생했던 경부역 매포역 탈선사고로 불편을 겪은 적도 있었다 보니 이 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크게 느껴지고 있어요(철도사고의 영향을 받은 것은 처음이네요 참조). 그렇다 보니 재래선이 더 필요해요. 좀 더 구체적으로는, 수도권과 대전충남권을 잇는, 기존의 경부선 구간과는 별개의 노선을 만들어서, 연선지역의 근거리, 광역여객교통 및 화물열차의 수요에 충당시키는 방안이 좋아요. 저 지도를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대전근교노선은 세종시 서부, 세종역(예정) 및 대전역을 잇는 바이패스노선으로 만드는 거예요. 이렇게 만들면 수도권과 대전충남권 사이의 고정교통수요도 상당부분 흡수가능할 뿐만 아니라, 부산, 대구 등의 영남권도 손쉽게 이을 수 있어요. 게다가 경부선의 대전이남 구간은 호남선, 전라선 계통의 여객열차가 이미 대거 빠진 후라서 용량이 넉넉한 편이니, 전술한 바이패스노선과 연계해서 장거리 화물열차에 배당하는 등 여러 대안을 도출할 수 있어요. 그리고 고속철도 대비 충분히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도 있어요.


한번 운임과 소요시간, 거리를 보도록 해요.

고속철도의 경우, KTX 일반실 운임은 서울-오송은 18,500원/50분 내외/123.2km, 서울-대전은 23,700원/1시간 내외/158.3km. 재래선의 경우는 서울-대전 구간의 ITX-새마을이 16,000원/1시간 50분 내외/166.3km.

해당구간은 그렇게 장거리라고도 할 수 없고, 이 정도에서는 재래선 차량의 가감속 성능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경쟁력이 있으니까 반드시 고속철도가 대안이 될 수는 없어요.


일본의 재래선 특급열차 4종을 보면 어느 정도 해답이 나올 수 있어요.

최고속도 130km/h의 21000계 및 21020계 특급전동차로 운행되는 킨키일본철도 오사카난바-킨테츠나고야 구간의 특급 어번라이너는 189.7km의 거리를 2시간 10분 내외에 연결하고 있어요. 표정속도(=전구간 거리/전체소요시간)는 대략 87.5km/h 내외 수준이죠. 그런데 이런 느린 열차가 신칸센과 경쟁하고 있어요. 오사카 시내에서는 JR의 신칸센 역은 북부의 신오사카역 하나뿐이지만, 킨키일본철도의 오사카 시내의 철도역은 중심가인 남부지역에 위치하고, 그것도 오사카난바, 우에혼마치, 츠루하시 등의 여러 역에서 이용가능하니까 도심착발의 수요를 많이 흡수가능하고 환승손실도 없거나 적은 편이니까 그 점에서 경쟁력이 발생하고 있어요. 게다가 신칸센보다 저렴한 것도 장점이예요.

역시 같은 최고속도의 JR큐슈 883계 특급전동차로 운행되는 하카타-오이타 구간의 특급 소닉은 198.5km의 거리를 2시간 25분 이내에 연결하고 최속열차가 2시간 1분에 해당구간을 주파하니 표정속도는 대체로 82.1-98.5km/h 사이라고 봐야겠어요. 이 경우는 1067mm 궤간이고 도중에 열차운행방향이 역전되어서 최고속도가 표준궤 및 일반적인 열차운행방식에 비해 속도를 높이기가 어려운 점을 감안해야겠죠.

160km/h 상업운전이 가능한 AE 2세대 특급전동차로 운행되는 스카이라이너는 64.1km를 43분에 주파하고 있는데, 이 경우 표정속도는 89.4km/h로, 지속적으로 고속으로 주행가능한 구간이 적어서 의외로 빠르지는 않아요.

이런 경우도 있어요. 오사카-카나자와 구간의 특급 선더버드는 681계 특급전차로 267.6km의 거리를 최속 2시간 31분에 연결하고 있어요. 이 경우 표정속도는 106.3km/h로, 표준궤만이 속도의 제왕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요.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선로의 허용속도는 궤간의 제곱근에 비례하니까, 이를 바탕으로 산정해 보면, 표준궤에서는 표정속도를 대략 123km/h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릴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저 4가지 사례를 통해 이렇게 추론이 가능해요.

속도가 느린 재래선이라고 할지라도 접근성이 높고 저렴하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생길 수 있고, 한국은 표준궤 운용국가이니 기본적으로 일본보다는 재래선열차를 고속으로 운용가능하고, 아무리 차량이 빠르더라도 결국 선로나 운영방식에 따라 속도향상 여부는 크게 달라질 수 있어요.

그러면 위의 저 결과를 서울-세종 재래선 구간이 신설된다는 가정하에 적용해 보도록 하죠. 일단 거리는 150km 정도로 잡고 저 표정속도를 적용한다면 1시간 14분의 소요시간으로 충분해져요. 어쨌든 KTX보다 느리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지만, 오송역에서 정부세종청사까지의 소요시간이 20분인 것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재래선이 더욱 경쟁력이 클 수 있어요. 열차에서 내려서 바로 택시를 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BRT(Bus Rapid Transit, 간선급행버스체계)로 소요시간을 10분으로 줄인다 하더라도 버스는 정해진 시각표대로 운행하니까요. 이에 비해서 청사 인근에 재래선 철도역이 들어서고 서울-세종 구간은 물론 인접도시와의 연결도 재래선으로 할 수 있게 되면 접근성의 향상과 교통운임의 절약이 양립가능해지니까 이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점은 명백히 보이게 되어요.


그러니까 결론적으로는, 철도를 더 만들어야 하는 것이 먼저이고, 고속철도는 장거리 교통수단에 특화시키는 한편 수도권과 대전충남권 사이는 재래선 네트워크를 확충해서 간선철도계통의 신뢰성을 증진시키면서 동시에 구간내 승객들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궁리를 하는 편이 더욱 바람직한 대안인 것이죠. 저렇게 KTX 만능론에 사로잡혀서 역을 어디에 세우니 마니로 싸우는 것은 지엽적이고 부차적인데다 사실 의미도 없어요.


그럼 다음 편에 계속할께요.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2 댓글

대왕고래

2017-08-12 00:39:21

역을 신설해봐야 사람들이 차 몰고 역까지 갈 거리가 줄어들 뿐, 교통이 원활해지진 않죠.

사람은 피를 골고루 보내기 위해 모세혈관을 많이많이 갖고 있어요.

교통도 마찬가지. 도로와 철도가 많을수록, 원활해지겠죠.

마드리갈

2017-08-12 00:55:36

철도는 고속 교통수단이면서 또한 도심접근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죠. 이것을 뒤집어 말한다면, 도심접근성이 낮거나 고속운전이 희생되면 철도답게 운영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로도 통해요. 수도권과 대전충남권을 자꾸 고속철도에 의존하게 되면 이것도 한계가 있고, 다른 권역으로의, 또는 다른 권역간의 장거리 고속교통의 수요 대응에도 악영향이 끼칠 것이 뻔해요. 게다가 낮은 도심접근성은 배보다 배꼽이 크게 되는 문제 등도 발생시켜 필요 이상의 비용을 초래하게 되니까 절대로 좋을 게 없어요. 그리고 우리나라는 아직 철도네트워크가 적고, 고속철도 이전에 재래선이 너무 부족해서 한 계통이 마비되었을 때 전국에 악영향이 가는 등의 취약점이 많다 보니 철도네트워크가 더 많아야 해요. 비유의 모세혈관처럼.


보통 항공의 경우는 직항이 비싸고 환승이 싼 편이죠. 항공권을 분할판매할 수 있으니까 가능한 것인데 레일 위의 비행기를 지향한다는 KTX는 역을 공항의 입지같이 잡아 놓고는 정작 항공교통의 영업형태는 보이지 않네요. 이런 생각까지 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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