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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터즈] Chapter 14: 불꽃. Episode 55

Papillon, 2021-04-25 12:01:21

조회 수
133

?

왜 사도가 되었는가…….

분명 간단한 질문이건만, 대답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도가 된 이유라니…….

?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

내가 사도가 되길 결정했을 때 남아있던 선택지는 단 둘뿐이었다.

이대로 죽든가, 아니면 사도가 되든가.

목숨은 살인귀에게 위협받지, 소중한 사람들은 악인에게 납치되었지. 그런 상황에서 여신이 살고 싶으면 사도가 되라고 하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사도가 된 이유를 대답하라고?

?

왜 그런 질문을 하신 것입니까?”

?

그 당시의 상황이 떠올라서 그런지, 답변을 요구하는 내 목소리에는 살짝 적의가 서려 있었다.

?

제가 왜 사도가 되었는지는 아실 텐데요?”

?

분명 쿠엔틴 회장의 정보력은 4대 귀족에 버금갈 수준일 터. 그런 그가 내가 사도가 된 정황 따위를 모를 리가 없다.

?

떠보기라도 하려는 건가?’

?

무얼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순순히 어울려줄 필요는 없을 터.

기분이 상했다는 걸 표현하려고 일부러 노골적일 정도의 적의를 풍겨보았지만, 쿠엔틴 회장의 표장에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

, 아무래도 자네는 내 질문의 의미를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군.”

?

오히려 그가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로운 태도. 마치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그는, 턱 밑의 수염을 쓰다듬더니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

내가 묻고 있는 건 자네가 어떻게사도가 되었냐고 아닐세. 그건 아마도 자네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을 거라네. 나의 질문은 자네가 사도가 되었냐는 것이지.”

같은 질문 아닙니까?”

다르지. 전자는 과정이지만 후자는 이유이지 않은가? 예를 들어…….”

?

-!

회장의 마르고 가는 손가락이 바닥을 살짝 누르자 놀랄 정도로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은 바닥을 덮은 먼지들. 그 회색의 입자들은 회장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물감이 되어 화공이 그린 것처럼 정밀한 얼굴을 그려냈다.

?

누군가는 가문의 업에 짓눌려 사도가 되지.”

?

먼저 그려진 것은 보어헤스 백작이었다.

?

힘에 취해서 사도가 된 이도 있고.”

?

그 이후 그려진 것은 살인귀, 블레어의 얼굴.

?

타인을 위해 사도가 된 이 역시 있지. 거기에 우연히 사도가 된 이도 있지만, 힘을 얻은 이후에는 자신의 목표를 찾아 움직였다네.”

?

먼지는 스테파니 씨의 얼굴을 새기더니, 이윽고 지금은 볼 수 없는 빅토리아의 미소를 그렸다.

?

사도의 힘이란 건 실로 굉장하지. 이 지상에 그와 견줄만한 건 용이나 마왕, 그리고 대마도사 같은 초월자들밖에 없으니 말이야. 그렇기에 하루아침에 그런 힘을 얻은 이들은 실로 바쁘게 움직이기 마련이지. 그런데 말일세…….”

?

다시 한번 손가락이 움직이며, 먼지로 된 그림은 마치 신기루처럼 눈앞에서 사라졌다. 대신 내 시야에 남아있는 것은 조금 전까지의 평온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두 눈뿐.

?

자네에게는 아무런 목적도 보이질 않아.”

?

분명 평범한 노인의 탁한 눈동자에 불과할 텐데. 어째서인지 그의 두 눈은 꼭 마왕 중 하나가 지녔다는 위압의 마안처럼,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

그저 매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걸 한 것뿐. 목적 따위는 없습니다.”

허허허, 개소리하지 말게나.”

?

나름대로 그 지옥 같은 눈동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솔직히 말했는데, 아무래도 회장의 마음에 들지는 않았나 보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실인데 말이지.’

?

나는 한숨을 쉬며 쿠엔틴 회장에게 자세히 설명하고자 했지만.

?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자네는 이골로냑과 거래하지 않은 거지? 아니 그 이전에 왜 가계약 시점에서 포기하지 않은 게인가?”

?

그가 지적한 사실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

블레어의 일도 보어헤스 백작과의 일도 급박하게 진행되었다는 건 알고 있네. 하지만 그 중간중간 자네에게는 도망칠 수 있는 순간이 있었어. 거기다가 이번 건은 자네가 어쩔 수 없이 참견한 것도 아니잖은가?”

?

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건지. 속사포처럼 말을 쏘아내는 쿠엔틴 회장의 목소리는 내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만을 각인시켰다.

?

다시 묻겠네. 자네는 왜 사도가 된 건가?”

?

또 한 번 돌아온 질문. 나는 이에 같은 대답을 돌려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가 지적한 점은 전부 사실이었으니까.

?

나는 왜 사도가 되었지?’

?

자문이 있었지만, 자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나는 대체 왜?’

?

마치 덮어두기라도 한 것처럼, 머릿속의 풍경은 공허하기 그지없었다.

대답은 떠오르질 않았고, 침묵이 무겁게 현실을 짓누르던 순간. 갑작스럽게 내 머릿속에 한 광경이 떠올랐다.

?

‘[그대는 어떠한 꿈을 꾸었는가?]’

?

그것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옛날 옛적처럼 느껴지는 이야기.

에스텔을 만나기 전, 이드라 님을 처음 알현했을 때 들었던 질문.

?

어쩌면 그게 정답일지도.’

?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그 외에 어떤 답변 역시 떠오르질 않았다.

?

……되고 싶었습니다.”

?”

영웅이 되고 싶었습니다.”

?

그렇기에 조금 자신 없는 태도로, 나는 그때 했던 답을 고스란히 내뱉었다.

?

그런가…….”

?

혹시나 이번에도 일축할까 봐 걱정했건만, 쿠엔틴 회장은 이전과는 달리 내 말에 반박하고자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표정.’

?

대체 무슨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의 표정은 오래전에 잊어버린 추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한참의 침묵이 지나가고.

회상에서 복귀한 쿠엔틴 회장의 탁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

과연 이해했네. 그대가 무슨 의도로 움직였는지 말이네. 그걸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조금 더 오래 산 사람으로서 이 이야기는 꼭 해야만 하겠네.”

?

어째서일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탁한 두 눈동자는 왜인지, 회한이라는 것으로 가득해 보였다.

?

자네의 그 꿈은 말일세.”

?

그 눈에 깃든 감정에 내가 의아함을 느낄 찰나.

?

이룰 수 없다네.”

?

그는 내 목표를 부정했다.

?

?

*** ***

?

?

그건 기억하기도 힘들 정도로 오래전의 기억이었다.

지금은 식어버린 혈액은 쇳물처럼 뜨겁고, 열정만큼은 비 오는 날 수로의 물처럼 넘쳐흐르던 시기.

늙고 기운 없는 지금과는 달리,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때였건만. 그는 친구의 말에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나는 모두를 구할 거다.’

?

그보다 수십 년, 아니 어쩌면 수백 년은 더 오랜 삶을 살아왔을지 모르는 친우는 그에게 그리 말했다.

그 당시에 그는 이를 말도 안 된다 여겼다. 자신의 벗이 대단하다고 여기긴 했지만, 그런 그라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의 예상은 옳았다.

그의 친우는 성공하지 못했다. 아니, 그걸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친우는 이제 다른 길을 선택했고, 그는 지금 쿠엔틴 그조차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막기 위해 변수를 최대한 줄이고자 했거늘…….

?

설마 여기서 이런 얘기를 듣다니…….’

?

눈앞에 있는 저 청년은 이번 사도야행 최대의 변수였다.

특이한 혈통 따위 없었다.

과거에 두각을 드러내는 행적 또한 없었다.

세간의 사람들이 떠드는 환생이나 회귀, 빙의 같은 허황한 가능성도 떠올렸지만, 그럴 리 없다는 것 역시 확신했다.

그저 지구 반대편 나비의 날갯짓처럼, 전혀 예측하지 못한 변수.

그것이 이 그레고르라는 이름의 청년이었다.

?

이대로 두면 친우와 똑같아질지도 모르지.’

?

영웅이 되고 싶다.

그의 친우가 말했던 모두를 구하고 싶다와 마찬가지로 공상에 가까운 발언이다.

그리고 친우가 그랬듯이, 이렇게 뜬구름 잡는 인물만큼 위험한 존재는 없다.

그러니까 제거해야 한다. 그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쿠엔틴 회장은 생각했다.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닐뿐더러, 하고자 한다면 언제든 처리할 수 있다고 그는 자신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

나도 늙었군.’

?

고작해야 친우의 옛 모습이 떠올라 뜻을 바꾸다니. 그런 자신의 모습에 살짝 헛웃음을 흘리면서 쿠엔틴 회장은 당황한 표정을 짓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

무슨 의미입니까?”

?

그의 목표, 아니 꿈을 부정한 말이 이해가 가질 않았음일까? 아니면 갑작스레 이런 말을 하는 쿠엔틴 회장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말을 하는 그레고르의 표정은 당황스럽게 보이는 걸 넘어 살짝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

영웅이란 영웅이 되려고 하는 순간 될 수 없기 때문이네.”

?

얼핏 듣기에는 모순처럼 들리는 발언. 그레고르 역시 그리 여겼는지, 표정에 혼란이 한층 더해졌다.

?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인가?”

솔직히그렇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

애초에 그것을 이해하는 이였다면 영웅이 되고 싶다는 발언 같은 건 하지 않았을 터.

?

.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좋을까?”

?

잠시 목을 축이기 위해 차를 마시니, 이 낡은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향긋한 다향이 코끝에 맴돌았다. 이에 살짝 감탄을 표하길 잠시. 차의 냄새 덕에 생각이 정리된 그는 이윽고 말을 이어갔다.

?

영웅이란 건 말일세. 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네. 필요한 상황에, 적절한 인물이, 옳은 행동을 하면서 탄생하는 것이지.”

…….”

상황은 문제가 없지. 사도야행은 참으로 영웅이 탄생하기에 참 좋은 시기이니 말이야. 문제는 적절한 인물의 옳은 행동이라네. 그 둘이 충족되려면, 영웅이 되려고 해선 안 된다네.”

어째서입니까?”

영웅이 되고 싶어서 활동한다는 건 그저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는 의미니까.”

?

그 말을 들은 순간, 그레고르의 표정에 미약한 한줄기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이 보인 것은 고작해야 2초 남짓한 짧은 시간. 하지만 쿠엔틴 회장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표정이기에, 그 의미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

혼돈.’

?

자신이 생각하던 가치 자체가 부정되었기에 보이는 반응.

?

본인이 특별한 존재 혹은 그런 존재가 될 자라고 생각하면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기 마련일세.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다 보면 점점 영웅보다는 악당에 가까워지지.”

마치 그처럼 말일세.’

?

무의식적으로 내뱉으려던 뒷말을 억지로 삼키면서 쿠엔틴 회장은 입을 닫고, 다시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이후 침묵의 시간이 강처럼 흘렀다.

쿠엔틴 회장 본인은 말을 끝마친 것처럼 입을 다물었고, 설명을 들은 그레고르에게서 답은 돌아올 줄 몰랐다.

그저 방 안에 남은 것은 환자의 신음과 차를 홀짝거리는 소리뿐.

?

자네는 어떻게 대답할까?’

?

본인의 친우와 같은 길을 걸을까? 아니면 조금 다를까?

그 침묵 속에서 쿠엔틴 회장이 기다림에 익숙해질 무렵.

?

?”

?

한줄기의 신호음이 사색의 끝을 고했다.

소리가 울려온 것은 그의 주머니에 있던 비상 연락용 마도구. 거기에는 그의 비서가 보낸 한 문장의 짧은 전언만이 남아있었다.

?

임무 완료.

아무래도 오늘은 대답을 듣지 못할 모양이로군.’

?

옛날 생각이 나서 한 간섭에 불과했는데, 어쩌다 보니 시간이 지나치게 흘렀다.

?

어쩔 수 없지.’

?

안타까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역시 순간뿐.

마음 같아서는 그 역시 그레고르의 답변을 기다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인명피해가 생긴다면 그 또한 달갑진 않다.

?

빈민가 남부에 가면 쓰레기 처리장이 있네. 제법 넓은 부지에 세워진 데다가 벽의 색이 특이해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네.”

?”

?

뜬금없이 주어진 정보가 의아했기 때문일까? 그레고르의 표정이 기묘하게 뒤틀렸지만, 쿠엔틴 회장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

그곳에 저 아이를 이렇게 만든 사도가 있다네. 그리고 그를 쓰러뜨린다면 그 아이에게 걸린 저주 역시 처리할 수 있지.”

?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당혹스럽던 그레고르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갔다.

혼란이 사라지고 거기에 남은 건 차갑게 식었지만, 뜨겁기 그지없는 분노.

?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무엇을 말인가?”

알고 계셨냐고 묻고 있습니다!”

?

조금 전까지 당혹감이나 상념 따위는 어딘가 사라지기라도 한 것인지 그레고르의 목소리는 당장 달려들 것 같은 짐승의 으르렁거림과 같았다.

?

흐음, 제법이긴 하군.’

?

타인의 살기 때문에 피부가 따갑게 느껴진 것이 얼마나 되었던가?

그 사실에 살짝 신선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쿠엔틴 회장은 그저 평온하게 그를 바라만 보았다.

이어진 잠시간의 침묵.

?

에스텔은 알고 있습니까?”

자네보다 먼저 들었다네. 이미 그곳에 도달해있겠지. 아마 지금쯤은 위기에 처해있을지도 모르네.”

?

다시 한번 평범한 사람이라면 질식할 것 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지만, 쿠엔틴 회장의 태도에 변화 따위는 없었다.

예상한 대로 망설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달칵-!

낡은 창문이 열리며, 작은 틈으로 한 줄기 빛이 스며들어왔다.

?

조언은 받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뭔가?”

저는 당신이 싫습니다.”

?

노골적인 걸 넘어 유치할 정도로 단순한 표현. 그 말에 쿠엔틴 회장이 무언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레고르의 신형은 사라진 채, 틈새에는 작은 짐승이 지난 흔적만이 남았다.

?

, 내가 싫다, …….”

?

살짝 얼이 빠진 것 같은 중얼거림.

하지만 쿠엔틴 회장의 표정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

그럼 나도 떠나보도록 할까?”

?

입가에 살짝 웃음기가 생긴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쿠엔틴 회장은 홀로 방을 떠났다.

빅토리아만을 남겨두고 가는 것이 실수일 줄은 꿈에도 모른 채로…….

?

?

*** ***

?

?

예상보다 허술하군.’

?

빈민가 남부의 쓰레기 처리장.

에스텔은 그곳에서 살짝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전해 받은 정보가 확실하다면 이곳을 점거한 사도는 그 제스일 터인데.

?

경비가 아무도 없다고?’

?

비록 조직원을 모두 잃었을지언정 빈민가의 왕이었던 존재다. 거기에 사도의 힘까지 손에 넣었으니, 수족으로 부릴 사람이 없을 터인데.

?

설마 정보가 잘못되었나?’

?

그렇게 생각하자 순간 그녀에게 이 장소의 위치를 전달해준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스테파니.

?

재미있지 않습니까?’

?

에스텔에게 정보를 전한 뒤, 그녀는 이죽거리듯 그렇게 말했다.

그 의미는 지금까지 불명.

에스텔이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그저 비웃음에 가까운 웃음을 띨 뿐, 어떠한 답변도 돌려주지 않았다.

?

아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건 아닌가?’

?

에스텔이 대답을 듣길 포기했을 무렵, 그녀에게 들려온 말은 고작해야 한 마디 말이었다.

?

그럼 앞으로도 기사 흉내 내시느라 수고하시길.’

?

기사 흉내.

평생 기사로서 살아온 에스텔에게는 모욕에 가까운 표현.

그렇기에 상대방이 터무니없이 강하다는 걸 알면서도, 에스텔은 그 순간 검을 뽑아 들 수밖에 없었다.

?

물론 헛수고였지만.’

?

검을 뽑아 들었을 때, 상대의 모습은 이미 어디에도 없었다.

마치 신기루랑 대화했던 것처럼.

이전에 그녀를 위협하고 사라졌던 것처럼, 스테파니는 이미 에스텔의 탐지 범위 밖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

내가 흉내를 내고 있다고.’

?

까득-!

지나치게 분노했던 것일까?

가뜩이나 조용했던 주변에 이를 가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는 바람에 에스텔은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침착하자.’

?

정보가 사실인지 확인되진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분노할 시기가 아니다.

?

정보의 진위부터 파악해야겠지.’

?

마음 같아서는 혼자서라도 아이들을 구하고 싶지만, 범인이 사도란 걸 생각하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

아이들을 구하려면 그레고르를 데려와야 한다.’

?

경비 인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살짝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에스텔은아이들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탐색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은 건가?’

?

쓰레기 처리장 중앙부에 있는 소각로. 그 주변에는 쓰레기를 녹여서 만든 것처럼, 뒤틀린 기둥들이 서 있었다.

에스텔의 시야에 비치는 건 그 기둥의 끝.

그곳에 아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팔다리에 화상을 입은 채.

누군가는 입이 용접되어 붙어버린 채.

누군가는 눈이 흔적만 남은 채.

모두 살아는 있는상태로 아이들은 거기에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소각로에 던져넣기 위해 준비해놓은 쓰레기처럼…….

?

빌어먹을 놈.’

?

그 참혹한 행태에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에스텔은 이를 억지로 억누르며 자세를 낮췄다.

그녀의 주변이 갑작스럽게 달아오르기 전까지는.

콰득-!

갑작스럽게 그녀를 움켜쥐는 거대한 손아귀. 붉은 금속 장갑으로 덮인 그것은 꼭 용광로에서 바로 꺼낸 강철처럼 뜨거웠다.

치익-!

단순히 녀석의 손에 잡힌 것만으로도 익어가는 피부. 거기서부터 시작된 통증에 에스텔은 비명을 지를 것 같았지만, 열에 성대가 다쳤는지 나오는 건 소리 없는 아우성뿐이었다.

?

체온이 늘었길래 바퀴벌레인 줄 알았더니.”

?

이윽고 그녀의 귓가에 들리는 것은 익숙하면서도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

?

나비가 들어와 있었나?”

?

제스, 그 남자의 목소리가 에스텔의 귀로 파고들었다.

?

?

?

?

=========================================================================================

?

잠깐 설정 이야기

?

이번에 캐릭터 외형의 베이스 이미지를 설명할 캐릭터는 액트 3의 주역인 빅토리아와 제스입니다.

이 둘은 쿠엔틴 회장과 스테파니와 비교해 이거다!’라고 할만한 이미지가 없었는지라 여러 캐릭터가 뒤섞인 모습입니다.

?

제스의 외형을 짤 때 참고한 캐릭터는 둘인데, 하나는 용과 같이 시리즈의 칸다 츠요시(이미지 링크 #), 다른 하나는 겐간 아슈라의 코마다 시게루(이미지 링크 #)입니다. 체형 쪽은 칸다에, 얼굴 쪽은 코마다 쪽에 가깝다고 해야겠네요.

?

빅토리아의 경우에는 사실 제스보다 더 비중이 있을 예정인 캐릭터입니다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캐릭터는 Fate/Grand Order의 모드레드 (이미지 링크 #)와 같은 작품의 카이니스 (이미지 링크 #)입니다. 연령대나 체구, 전체적인 분위기는 모드레드를 캐릭터의 피부색 등 외형적 특성은 카이니스를 참고했다고 봐야겠네요. 그 외에도 세세한 것이 있습니다만, 이건 나중에 세세한 설정에서 풀도록 하지요.

Papillon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4 댓글

SiteOwner

2021-04-25 23:53:01

영웅이란, 영웅이 되려고 하는 순간 될 수 없기 때문...

반박도 동의도 할 수 없는 이 기묘한 표현이 담은 것이 너무나도 많아서 정말 혼란스럽기 짝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그 말의 함의를 잘 알아야겠지요. 그게 관건인 듯합니다. 그리고, 영웅이 타락하여 악당이 되는 과정에서의 문제점까지 지적해 둔 쿠엔틴 회장의 심모원려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상태로 아이들이 기묘한 상태로 전시된...

토할 뻔 했습니다. 꿈에 나올까 두렵습니다.

Papillon

2021-05-02 15:00:07

영웅이란 영웅이 되고자 하는 순간 실격이란 대사는 사실 가면라이더 류우키(국내 정발명 가면라이더 드래건)의 패러디이기도 한 대사입니다. 해당 작품에 영웅이 되겠다고 날뛰던 캐릭터가 듣게 되는 일침이거든요. 개인적으로 원펀맨의 대사인 '취미로 히어로를 하는 사람'이라는 대사와 함께 히어로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고 보는 대사라고 생각해서 인용해보았습니다.


쿠엔틴 회장은 현재 사도야행 관련자인 인간 중에서는 최연장자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전대 사도야행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지요. 그가 앞으로 그레고르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기대해주시길.

마드리갈

2021-04-26 20:28:13

"왜?" 를 대답하기는 매우 어렵죠. 게다가 자신의 원점에 대한 것은 더더욱.

그런 질문을 받으면 누구나 당혹스럽겠지만, 일분 일초가 아쉬운 그레고르에게는 정말 뜬금없는 질문. 그러나 상황을 바꾸려면, 언젠가는 그 질문과 마주해야겠죠.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

영웅이란 되어야 하지만 바라는 것으로는 이룰 수 없는 지위. 분명 맞는 말인데 긍정도 반박도 못 하겠어요.


아이들이 살아 있긴 하네요, 그런데 너무도 처참한...

죠죠의 기묘한 모험 4부의 스탠드 능력을 가진 쥐 에피소드가 생각나면서 몸이 가려워지네요.


역시 소개해 주신 이미지가 적절하네요.

제스는 투박한 근육돼지형이고, 빅토리아는 작은 체구의 활달한 소녀. 짐작이 대략 맞았어요.

Papillon

2021-05-02 15:01:53

"왜"라는 건 가장 어려운 질문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질문이지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잃는 순간 정책이든 개인이든 길을 잃기 마련이니까요.


제스와 빅토리아는 이미지가 선명한 캐릭터지요. 그래서 이미지를 찾기 비교적 쉬운 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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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터즈] Chapter 14: 불꽃. Episode 54

| 소설 4
Papillon 2021-04-18 123
1865

[단편] 뜨겁게 차갑게

| 소설 4
  • file
시어하트어택 2021-04-17 120
1864

[초능력자 H] 102화 - 공항에서 호텔까지

| 소설 4
시어하트어택 2021-04-16 118
1863

[초능력자 H] 101화 - 여행, 시작!

| 소설 4
시어하트어택 2021-04-14 122
1862

[시프터즈] Chapter 13: 어긋남. Episode 53

| 소설 4
Papillon 2021-04-11 121
1861

[시프터즈] Chapter 13: 어긋남. Episode 52

| 소설 4
Papillon 2021-04-04 121
1860

[시프터즈] Chapter 13: 어긋남. Episode 51

| 소설 4
Papillon 2021-03-28 125
1859

틈틈이 그려본 그림 2점.

| 스틸이미지 4
  • file
시어하트어택 2021-03-27 125
1858

모여봐요 철도모형의 방

| 스틸이미지 10
  • file
마키 2021-03-25 187
1857

[시프터즈] Chapter 13: 어긋남. Episode 50

| 소설 4
Papillon 2021-03-21 148
1856

[괴담수사대] XI-1. snowball

| 소설 3
국내산라이츄 2021-03-16 127
1855

[괴담수사대] Prologue-XI. 백면단도

| 소설 3
국내산라이츄 2021-03-16 130
1854

[시프터즈] Chapter13: 어긋남. Episode 49

| 소설 4
Papillon 2021-03-14 125
1853

이발소 그림

| 스틸이미지 4
  • file
Lester 2021-03-14 128
1852

[시프터즈] Chapter12: 질투. Episode 48

| 소설 4
Papillon 2021-03-08 135
1851

[단편] 오지 않은 봄

| 소설 4
시어하트어택 2021-03-07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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