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부터 생각해 왔습니다.
한국사회의 각종 고질적 문제들을 통괄하는 어구가 있다면 무엇으로 압축가능한지를.
그리고 표현해 보고자 합니다.
"사람을 닳게 만드는 사회" 라는 4어절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비록 어느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그런지는 모두 열거할 수 없겠습니다만, 일단 인간관계, 시험제도, 비즈니스모델의 세 축에서 그게 유독 심하다고 판단되고 있습니다.
우선 인간관계.
물론 해외라고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유독 국내에서 심한 것으로는 성씨, 본관, 출생지 등의 선택불가능한 것에 의한 옭아매기가 있고, 그것 이외에도 별별 기준으로 줄세우고 낙인찍는 일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틀에 맞지 않는다면 그때부터는 절대로 가만히 놔두지를 않습니다. 이게 그냥 오프라인에서만 그렇다면 그건 또 문제가 좀 덜할 것인데, 각종 혐오를 노정하는 언어, 단톡방으로 약칭되는 메신저 기능을 이용한 옭아매기 등 다양한 형태로의 변용을 거쳐 온라인에서도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런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서 누가 멀쩡히 살아남겠습니까.
시험제도도 사람을 닳게 만들어 버립니다.
각급학교 및 대학의 입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실 수능시험 듣기평가 도중에 항공기 이착륙을 금지시키는 배려심을 정 발휘해야겠다면, 그 마음을 교육의 사각지대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돌려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게다가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도 진로에 고심을 해야 할 정도로 변별력이 형편없으니 그냥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공부에만 특화된 그러한 스터디머신이 되어야 합니다.
비즈니스모델로 가면 더욱 가관이 되어 버립니다.
앞에서 말한 인간관계나 시험제도와는 또 다른 장벽이 있는데, 무슨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아니고, 시장에 참여하는 개인에게 앞의 두 축을 벗어나라고 말하지만 정작 깔아놓은 카페트는 철저히 그 두 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폭넓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지니면서, 어떠한 일이 주어져도 조금의 오차도 없이 예외없이 완벽하게 직무수행을 해내고, 적은 급여 및 긴 근무시간에 만족하면서 집에 돌아가면 여유있게 취미생활을 즐기는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실제로 이런 사람들을 원하고, 그래서 각종 까다로운 전형이 몇 라운드에 걸쳐서 일어나지만 그렇게 난관을 뚫고 입사한 신입사원 상당수가 채용된 해 또는 수년의 단기간에 회사를 떠난다니까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지요. 게다가 해당분야의 최고의 숙달된 인력이 전혀 실수가 없다는 가정하에 업무소요시간을 잡는다든가, 앞으로야 어떻게 되든 겨우 품질기준만 통과할 수준으로 제품을 내놓고 그것을 독려하는 관행을 지속하는데 여기에서 무슨 창의와 혁신이 나올까요?
이렇게 사람을 닳게 만드니까,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가 여기저기서 터집니다.
당장 프로 운동선수같은 경우 젊은 유망주가 오래 못가고 일찍 현역 선수생활을 접고 말아버리고, 성장기에 체육활동만에만 혹사당해 배움의 양과 깊이는 다른 사람들만큼 미치지 못하여 버립니다. 그리고 운동선수만 그렇겠습니까. 수많은 취업준비생들 또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사람을 닳게 만드는 관행에 대해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과 실천이 없는 한, 이 사회는 생활의 무게에 지쳐 전반적으로 무기력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을 말해 드릴까요? 우리나라의 인구는 5천만명을 좀 넘는데,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의 세계 주요국가들은 물론이고 무섭게 성장해 오는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미얀마 등의 아시아의 신흥국들보다도 인구가 적습니다. 즉 사람이 닳아서 소모되면 확실히 불리한 쪽은 우리나라가 된다는 사실. 인력자원이 거의 유일한 자원인 우리나라에 다가올 미래가 우리의 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기 전에 생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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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마시멜로군
2016-03-30 00:20:33
우선 현역 고등학생으로서 시험은 확실히 사람을 닳게 하는 효과가 있는듯 해요. 정신이 너덜너덜해진달까요? 교육 정책을 만들때 당사자들을 고려 안하는거같기도 하고요. 왜 그렇게 오락가락인지도 그렇고요.
SiteOwner
2016-03-30 18:39:52
그렇게 되는 이유로 몇 가지를 추론해 보자면 이렇게 요약이 가능할 것입니다.
첫째, 인재를 키워내기보다는 영웅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국내의 일반적인 경향. 이것을 레이딩(Raiding)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적은 비용으로 큰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좋기는 합니다. 스포츠엘리트에만 집중하고 저변확대에는 별 관심없어하는 것이나, 신입사원에게 경력을 요구하거나 아예 경력사원 위주로만 뽑는 것도 이것의 연장선입니다. 영단어 raid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 보시면 답이 나옵니다.
둘째, 사교육을 막아야 한다는 이상하고 실현가능성 없는 사념. 사실 교육의 공공성과 교육컨텐츠를 정부가 독점공급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임은 물론이고 양자에 논리적인 연관성도 없습니다. 그런데 정책입안자들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가 봅니다. 그래서 EBS에서 교육컨텐츠를 공급하고 거기서 수능문제를 최대한 난이도를 낮춰 출제해야 사교육이 없어질 것이라고 믿는가 보는데,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로또수능, 물수능으로 대표되는 대혼란에, 각 고교의 3학년 교실에서는 교과서가 버림받는 상황까지 더해졌습니다. 사교육이 없어졌을까요? 종로학원, 대성학원, 메가스터디, 비타에듀 등이 파산했다는 말은 과문의 탓인지는 몰라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셋째, 청소년의 성장에 대한 이해 부재. 그냥 오랜 시간동안 잡아놓고 있으면 공부가 저절로 되는 줄로 착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의 환경이 좋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비정상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공간에 위생대책도 태부족이니 골병이 안 든다면 그게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넷째, 비합리적인 사고방식. 결국 수능시험은 저의 선배 세대들이 치룬 학력고사와는, 선지원 후시험제가 선시험 후지원제로 바뀐 이외에는 사실상 다를 바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할 것 같으니 집어넣을 대로 집어넣으면 될것이다는, 합리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고방식에 기인하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그 중요하게 보이는 것들이 정권에 따라 달라지니 매번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파스큘라
2016-03-30 11:55:35
인적자원이 거의 유일한 자원이면서 그 인적자원을 숫제 소모용 부품 취급하며 마구 굴리고 혹사시키고 있으니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나중가면 사소한 부품 하나를 교체못해 멈춰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SiteOwner
2016-03-30 19:04:53
사실 지금도 위험징후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시로는, 이전에 동생이 악독함과 불공정의 안쪽 시리즈에서 다루었던 것과 같은 것들이 있고, 추가적으로 언급하자면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조종사 비하발언인 일명 "개가 웃어요" 발언 같은 것도 있습니다. 이미 대한항공 조종사들의 타 항공사로의 이직이 꽤 많아져 있는데다 남은 조종사들도 사측의 횡포에 맞서고 있는 등 그다지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이러한 갈등이 언젠가는 큰 문제로 부상할 것 같습니다.
안전관련 투자에 인색하여 여기저기에서 사고가 터지는데, 앞으로는 인적자원 투자를 게을리한 대가를 지금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지불할 것 같습니다. 이 예측이 틀리기를 바라기도 힘들어지네요.
안샤르베인
2016-03-31 02:06:05
뭐랄까 확실히 보고 있자면 사람을 기계판으로 찍어내려는건가 싶은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어떻게든 기준에 맞춰보겠다고 판에 찍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도 씁쓸하고요.
SiteOwner
2016-03-31 13:28:32
맞습니다. 이미 본문에서 언급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맞추려고 사람을 닳게 만들어 버리는 게 국내의 세태입니다. 당연히 몸과 마음이 제대로 남아나지도 않고 지쳐 나가떨어져 버리고 말아 버립니다. 이러면서 창의와 혁신? 그게 가능할 리가 없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러니 유년기 및 청소년기에는 세계최고수준의 지적수준을 보이다가 중년이 오기도 전에 급격히 지쳐버리는 패턴이 구조화되어 버립니다. 이것은 레밍의 집단투신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미 우리 주위에는 타산지석이 될 사례가 많습니다. 나치독일의 각종 상징조작, 소련의 대숙청, 중국의 문화혁명,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등으로 대표되는 반지성주의 폭력사태, 개인의 능력 및 직무공헌 인정에 인색한 결과 급증한 일본의 두뇌유출, 그리고 전체주의의 폐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북한 그 자체. 그런데 이제는 우리나라가 타국의 타산지석이 될 차례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