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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를 요즘 다시 읽고 있습니다.

콘스탄티노스XI, 2017-07-03 15:12:53

조회 수
191

*이 글은 '눈물을 마시는 새'에 대한 스포일러를 여럿 포함하고 있습니다. 작중 주요 스포일러가 모여있으니 스포일러가 싫으시다면 뒤로가기를 눌러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소설을 처음 읽은건 대강 고2때쯤으로 아는데...지금와서 읽으니깐 이것저것 감회가 상당히 새롭더군요. '그래 여기선 얘가 나오지.' '아 얘가 여기서도 나왔네.' '이렇게 흘러가겠군.' 뭐 대강 이런식으로? 앞날을 안다는게 이렇게 재밌는건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까먹고 있었던게 두억시니는 기억속에서도 상당히 괴기스러운 그로테스크 생물로 알고 있었는데 다시 보다 보니 원래 모습보다 몇배는 더 괴기스럽더군요(....) 귀가 한쪽에만 4개가 달려있다라던가, 다리가 세개달려있다던가하는것들을 머릿속에 구체화시키려드니...어휴... 뭐, 이미 손하나가 사타구니에 달려있는 애도 있긴 하니... 다만 유해의 폭포의 변형은 상상할수록 상당히 그로테스크하더군요. 손가락들이 뭉쳐서 뱀형태가 되면서 그 손가락들 마디마다 눈이 달려있는 모양새라고 작중에서 묘사하니...텍스트를 토대로 모습을 생각하려다가 생각하는걸 그만뒀습니다(...) 도깨비들의 도시인 즈믄누리나 후속작인 '피를 마시는 새'에 등장하는 도시인 하늘누리, 소리도 그렇고 '새 시리즈'에서는 전체적으로 텍스트로 그림으로는 떠오르게 하기 힘든 이미지를 표현하는거 같습니다.(작가의 전작인 '드래곤 라자'시리즈나 '폴라리스 랩소디'에서는 그런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던걸로 기억해서....)


그리고 책을 다시보면서 대강 예전과는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한게 좀 있는데, 옛날에 이작품을 봤을때는 해당작품에서 왕을 은유하는 '눈물을 마시는 새'가 무엇을 뜻하는건지 잘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단순히 마지막에 사모가 케이건에게 했던 말을 통해서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해주는 자'정도로 대강 넘어갔죠. 그런데 최근와서 이 소설을 다시 보기 시작하니 이 눈물을 마시는 새가 무엇을 뜻하는건지 대강 알거 같더군요.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작중 주역인 케이건 드라카는 이렇게 말합니다. '왕은 눈물을 마시는 새다.' '왕이 사람들의 눈물을 마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비정해진다.'  또한 작중에서 이런 대사도 나옵니다. '왕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이를 두고 전 '눈물'과 '눈물을 마시는 새'에 대한 의미가 '눈물은 인간에게 있는 두려움과 망설임, 그리고 전통적 관념이고, 눈물은 마시는 새는 이러한 것들을 희석시키거나, 없애버리는 군주의 강력한 권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기서 잠시 이 소설의 배경을 설명하자면, 이소설의 배경인 아라짓 대륙은 대륙을 지배하던 강력한 국가인 아라짓 왕국이 나가에 의해 멸망한 이후 각지에서 지방 세력들이 흥기하던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부의 세력은 특별히 대륙 전체를 지배할만한 강력한 세력이  없기에 고만고만한 세력들이 각지에서 대립중이고, 외부의 위협이라 할만한 나가는 냉혈동물이라 특정지역에서만(작중에서는 '한계선을 넘어가면'이라고 표현합니다.) 살 수 있기에 외부의 침략에 맞서 자기들끼리 뭉치는것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각지역에서는 '제왕병자'라 부르는 필부들이 부랑배 수십명 데리고 왕이라고 자기 스스로를 칭하는 자들이 넘치는 혼란한 상황입니다. 물론 이러한 제왕병자 휘하에 부하들이 멀쩡할 리 없습니다. 강한 적을 만나면 몸이 굳어버리고, 무섭다 싶으면 도망치기 직전상황이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왕병'은 필부들외에 한지역을 다스리는 군주들도 걸리는 경우가 있는데,(작중에서 묘사된 바로는 자보로 마립간 지그림이나, 발케네 대족작 코네도 빌파정도가 해당됩니다.) 이들이 다스리는 군대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지 크게 다르지는 않으며, 무엇보다 이들은 그 지역의 체제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지그림 마립간은 자기 부하들에게 '지그림 아저씨'라는 말이나 듣고, 자기 큰아버지한테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칼집으로 맞는 모습을 보입니다. 코네도 빌파는 지그림수준으로 꼴사나운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명색이 왕을 노리는 사람이 '발케네식'으로 옛 아라짓 왕국의 상징인 '바라기'라는 검을 훔치려다가 걸려서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입니다. )


그러나 소설 후반부에 대호왕을 중심으로 다시 뭉친 아라짓 왕국군이나, 후속작 '피를 마시는 새'에서 나오는 아라짓 왕국이 발전해 생긴 '아라짓 제국'의 군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설령 자살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작전이라도 왕의 명령이니 무조건 적으로 따르며, 왕과 함께 목숨을 바쳐 싸우는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러한 '두려움, 망설임의 상실.'과 함께 또다른 중요한게 '전통적 관념의 쇠퇴, 붕괴'입니다. 


예를 들자면, 후속작인 '피를 마시는 새'에서 발케네 공작 락토 빌파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면서, 아라짓 제국의 황제인 치천제가 점령지에 내린 명령은 '발케네인들중 아주 어리거나, 늙은 자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남녀 가리지 말고 죽여라.'입니다. 늙은 자들은 얼마 못가 죽을테고, 어린 아이들은 얼마안가 점령지에 제국인들이 새로 이주하면 그들의 옛문화를 잊어버리고 중앙의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일테니까요. 또다른 예로는 오만하고 강력해 무리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레콘들의 '군대'를 조직한걸 들 수 있습니다.(작중에는 아예 이를 '가짜 레콘'이라 언급할 정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라짓 제국의 황제 치천제가 고대 아라짓 왕국의 나가잡는 부대였던 '아라짓 전사'라는 이름을 자신의 호위 나가 부대에게 하사한걸 들 수 있겠습니다.(작중에도 전통에 대한 모욕이라 합니다.) 이러한 전통의 붕괴와 쇠퇴, 왜곡 역시 왕의 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눈물을 마시는 것'이죠.


왜 이걸로 사람이 비정해지는거냐고 물을 수도 있으실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에는 도덕이나 예의등이 역시 포함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국가(또는 왕)은 자신의 권위를 통해서 이러한 도덕을 붕괴시킬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왕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될수록, 곧 '왕이 사람들의 눈물을 더 자주 마실수록', 국가내에선 병폐,혹은 모순이 넘치게 됩니다. 결국 '눈물을 마시는 새'는 죽어버리게 되는거죠. 그러나 한국가가 죽어도 그 국가의 지정학적, 혹은 '국가 그 자체'는 계속 남아있습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그건 바로 단일체로써의 국가는 '눈물을 마시는 새'일뿐이지만, 개념으로써의 국가는 '피를 마시는 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피를 마시는 새'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말그대로 '피'입니다. 국가를 멸망시키는 피, 국가를 유지시키는 피 말이죠. '눈물을 마시는 새'를 죽인다 하더라도 국가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흘린 수많은 피로 인해 사람들은 국가라는 체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것조차 상상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국가라는 체제 그자체를 뛰어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작중 예를 들자면, 치천제가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게 된 이후, 아라짓 제국은 사실상 멸망하지만, 아라짓 제국이라는 개념과, 그 휘하 속국들은 전부 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결론을 내리자면 '인간은 결국 국가라는 개념에서 벗어날 수 없다.'가 되는데, 이러면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나오는 '다섯번쨰 종족'(정확히는 첫번째 종족)이 국가라는 개념을 포기하고 완전히 각성해 '개념'이 되버린 것을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론은....영도작가님 신작좀 내주세요...이대로면 완결이 제대로 안된다고....

콘스탄티노스XI

도시가 무너져 가는데, 나는 여전히 살아있구나!-1453, 콘스탄티노플에서. 유언.

https://en.wikipedia.org/wiki/Constantine_XI_Palaiologos-이미지

7 댓글

마드리갈

2017-07-03 16:52:20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는데 그런 내용이었군요. 제목 자체가 굉장히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고, 그것들이 국가와 권력에 대한 여러 각도에서의 고찰을 요한다는 것이 또 놀랍게 보여요. 그래서 인기작이기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조직은 개인들의 총합 그 이상이고, 그래서 역시 국가라는 조직까지 만들어지지만, 그게 인간의 한계이니까 세계정부 같은 것은 만들어지지 못한다고 볼 수 있는데, 말씀하신 그 국가라는 개념을 포기하고 완전히 각성해 버린 종족은 모순적이네요. 작가가 그 문제를해결해야 그 모순이 풀리겠어요. 그게 풀리게 되면, 왜 실생활에 직접 없는 다이아몬드는 비싸면서 매일의 생활에 중요한 물과 식료품의 가격이 낮은지를 설명하지 못한 국부론을 한계효용이론이 명쾌히 보완한 것같은 사례가 되겠죠?

콘스탄티노스XI

2017-07-03 18:06:41

뭐 4개 시리즈중 2번째까지만요. 3번째, 4번째가 나와야 완결이 될텐데...

Papillon

2017-07-03 22:05:12

이 작품이 쓰여지게 된 계기에 대한 야담이 참 재미있죠.


과거 이영도 작가와 김경진 작가(밀리터리 소설 데프콘의 저자) 사이에 일종의 언쟁에 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한국적 판타지 논쟁"이었죠. 김경진 작가는 대한민국 최고의 판타지 작가라는 이영도가 정작 D&D룰을 베이스로 한 설정이나 쓴다며 비판했고 이영도 작가는 한국인 작가가 한국의 감성을 가지고 쓰면 그게 한국적 판타지지 따로 한국적 판타지가 있느냐는 식으로 반론을 했다고 합니다. 뭐, 대다수의 인터넷 상 논쟁이 그렇듯 별 소득없이 끝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만……얼마 후 "눈물을 마시는 새"가 나왔다고 하죠.


이영도 작가 본인이 이것이 계기라고 밝진 않아서(애초에 작가 본인은 한국적 판타지라는 용어 자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단순한 야담 정도입니다만 재미있는 이야기지요. 

Papillon

2017-07-04 23:11:44

이영도 작가의 반론이 "한국인이 한국인의 감성으로 쓴 판타지가 곧 한국적 판타지"였던 것을 보아서 아마 소재 이야기에 가까웠을 겁니다. 제가 당시 두 작가의 논쟁을 실제로 본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알 수는 없습니다만, 소위 한국적 판타지 소설 논쟁이 유행할 때 자주 나오던 주장이 "오크 대신에 두억시니가 나와야 한다" 수준이었거든요. 이는 한국적 라이트노벨 논쟁으로도 이어져서 "부활동 대신에 야자가 나와야 한다" 등의 주장이 나왔습니다만 현재 와서는 "한국적 라이트노벨 무용론"으로 수렴되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영도 작가의 주장에 동의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실제로 제가 대학시설 교양으로 들었던 종교학 강의 교수님이 드래곤라자의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는 대사를 듣고서는 "유교사상과 닿아있다"라고 말씀하셨던 경험도 있고요.

콘스탄티노스XI

2017-07-04 22:51:45

흥미로운 야담이군요. ...그나저나 김경진 그사람 소설도 딱히 한국적이진 않을텐데...대하소설의 탈을 쓴 라이트노벨 아닙니까?(김경진 소설은 임진왜란 정도밖에 안읽어봤지만, 읽어보고 라노베랑 비슷한 느낌을 느꼈는데...)

SiteOwner

2017-07-04 20:33:01

작품을 오랜 시간 뒤에 다시 감상하게 되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거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새로 보인다든지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하신 눈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 모두 꽤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군요.

전통이라든지 이런 것은, 인위적으로 성립되고, 의외로 역사도 깊지 않습니다. 그러니 전통을 창설하고 계승하는 것도, 그리고 그것들을 약화시키고 없애는 것도 결국 인간의 의지가 현실에 투영된 결과인 것이고, 그 중 가장 강력한 힘 중의 하나가 권력자의 의지입니다. 충분히 납득됩니다.


그나저나, 묘사되는 그 괴생물들의 이미지는 확실히 끔찍하군요.

꿈에 나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콘스탄티노스XI

2017-07-04 23:02:14

몽골이 불태운 중앙아시아의 소수민족들이 상당하다하죠. 어찌보면 권력의 무서운 면모입니다.


뭐...작중 두억시니는 '생물체의 찌거기만으로 만들어진 되다만 존재'라고 작중에 묘사하기에 이게 더 말이 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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