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 1. 게임과 공시생과 사교육
여러 현안의 의외의 접점 - 2. "여자 몇 분?" 과 열정페이
"철근 한 개 빼면 술 마실 돈이 생긴다."
우리나라의 구조물에 왜 부실공사가 많았는지의 이유는 이 한 문장으로 표현되는 과거의 악관행이 대표하고 있습니다. 즉 원래의 설계도대로 시공하지 않고 자재가 온전히 들어가야 할 곳에서 티가 안나게 하나 둘 빼면 당장에는 티도 나지 않고 업계 관련자 몇명의 회식비도 나오고 앞으로의 재개발 사업의 여지도 있으니까 미래의 일감을 확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니 일석삼조라는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실제로는 이렇게 선순환(?)이 이루어지기 전에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처음에 설계한대로 수명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예측을 벗어나 구조물 자체가 큰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사례가 1970년의 와우아파트 붕괴사고, 1994년의 성수대교 붕괴사고 및 1995년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입니다.
각종 구조물은 설계 단계에서 안전율(安全率, Safety Factor)이라는 개념이 적용됩니다.
구조물은 실제로 버틸 수 있는 하중이 사용중에 견뎌야 하는 하중보다 반드시 커야 합니다. 즉 단위 바닥면적, 이를테면 1제곱미터당 의도된 사용하중이 300kg이라면, 실제의 최대하중의 값은 반드시 300kg보다 커야 합니다. 이 경우 최대 내하중이 360kg이라면 사용하중 대비 최대하중의 비율은 1.2가 되고, 따라서 안전율은 20%가 됩니다. 이것을 당장 희생한다고 해서 바로 티가 나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내부공사를 위해서 자재를 옮기고 설치한다든지 지진이 일어나서 구조물이 심하게 흔들린다든지 하는 등 과부하가 걸리는 일이 발생한다면, 안전율이 모자라는 구조물은 피해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어서 그렇지 않은 구조물보다 먼저 손상되어 버립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에 안전율이 부족하다면 사람들이 대피할 소요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조금 더 비정하게 바꾸면 사람들이 탈출하기 전에 건물이 무너져서 그 구조물이 생지옥이 되어 버리는 상황이 안전율 부족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통수단의 운용에서도 마찬가지로 안전율이 다른 용어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선박에는 흘수선(?水線, Draft)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선박은 자중이 있어서 물에 어느 정도 잠기기 마련이고 운용목적에 따라 인원이 탑승하거나 연료, 화물, 기자재 등을 적재하면서 잠기는 깊이가 더 깊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 잠기는 깊이는 한계가 있어서, 그 한계를 넘어 버리면 배는 가라앉고 말아 버립니다. 그래서 일정 깊이 이상 잠기지 않도록 선박의 외부에 표기하는 선이 바로 흘수선입니다. 물론 흘수선만 맞는다고 다가 아닌 것이 선박은 항행하는 수역의 그때그때 바뀌는 상황에 안전하게 대처하기 위해 수면하에서 각도조절이 가능한 핀 스태빌라이저(Fin Stabilizer), 길이 방향으로 설치되는 고정식 날개인 빌지키일(Bilge Keel), 물을 채워 선체의 평형을 맞추는 밸러스트 탱크(Ballast Tank) 등의 여러 안전장치를 갖고 이것들이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즉 흘수선이 맞더라도, 핀 스태빌라이저가 고장나서 움직이지 않거나 밸러스트 탱크의 물을 빼서 그 무게만큼 화물을 과적했다면 갑작스럽게 항행중 발생하는 문제에 대처하기 힘들어지고 선박은 복원력을 잃고 전복사고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것의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4월 16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사고입니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구조물의 안전율을 조금 희생해서 작은 이득을 챙겼다가 대참사로 귀결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1990년대의 사고공화국, 그리고 2010년대의 최대의 교통참사인 세월호 침몰사고를 겪은 한국사회는 여기에서 얼마나 교훈을 얻었을까요? 그렇다고 대답하기 힘든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도 최신기사로.
앞뒤 안맞는 電力정책 - 조선닷컴 2017년 8월 9일 기사
기사의 골자를 간단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전력설비의 예비율을 현행 22%에서 18-20%로 2-4%p, 비율로는 9.1-18.2% 낮추겠다는 것입니다.
이 기사를 읽고 나니까 과거의 구조물 안전율 확보 자재를 착복하던 관행과 세월호 침몰사고의 원인이 같이 떠오르는데, 기우인 것일까요.
전력망은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시스템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기간전력망의 경우 저용량의 발전소를 많이 세우기보다는 고용량의 발전소를 적게 세우는 편이 건설, 관리, 효율 등 여러모로 유리합니다. 그래서 신속대응, 비상수요 등을 전제로 한 발전소를 제외하면 기본전력수요를 담당하는 발전소는 최근에 만들어지는 것일수록 발전량이 대체로 커지는 것이 추세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뒤집어 말해볼까요? 한 발전소가 갑작스럽게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그만큼 전력공급에 손실이 커지는 것입니다. 기존의 발전소 100개로 충당하던 전력을 새로운 발전소 25개로 공급가능한 상황은, 개별 발전소의 능력이 4배로 늘어나는 동시에 한 발전소에 문제가 생기면 손실이 전체 전력의 1/100이 아니라 1/25로 높아진다는 것도 의미합니다. 즉 빠지는 것은 철근 한 개 수준이 아니라 기둥 단위로 커집니다.
게다가, 기계는 계속 사용하면 필연적으로 노화되고 성능이 떨어지기에 이상이 감지되면 가동을 멈추고 정밀점검, 오버홀, 주요부품교체 등의 작업을 해 줘야 합니다. 게다가 모든 발전기가 신뢰성이 동일하지 않고, 같은 모델이라도 하더라도 제조공차가 있기 마련이라서 특정 장비의 평균무고장시간(Mean Time Between Failure, 약칭 MTBF)은 어디까지나 평균일 따름이지 개별 장비의 수명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MTBF 1,000,000시간의 발전기의 허용오차가 0.01%라고 한다면, 어느 발전기는 999,900시간 운용 뒤에 고장이 날 수도 있고, 동일 모델의 다른 발전기는 1,000,100시간 운용 뒤에 다운될 수도 있습니다. 만일 먼저 고장난 발전기가 담당하는 시간대가 에어컨을 한참 써야 하거나 고속전철 운행이 집중된 시간대라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그 발전기에서 생산된 전력이 공급되는 계통이 공급량 유지에 특별히 주의를 요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상황에서도 별일 없으니 문제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 더워도 좀 참지, 빠르게 안 가면 되지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데이터센터, 식품유통용 콜드체인, 종합병원 등이 올스톱되고 중요한 비즈니스 관련으로 이동하는 승객이 정전사태로 인해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될 때의 손해는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닙니다.
그러니 전력설비의 예비율을 낮춘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과거의 구조물 시공에서의 악관행이나 위험하기 짝없는 교통수단 운용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게다가 발전설비는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연속가동되니 언젠가는 노후화되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문제가 발생하기 더 쉬워지니까 예비율의 현상유지조차 그리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없는 것이 명백합니다. 그런데 예비율을 낮춘다니, 그러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책입안자들이 손수 발전기를 돌려 전력을 공급해 주기라도 하겠다는 건지, 이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습니다.
과거의 악관행에 대해서는 개발독재 시대의 잔영이다 어떻다라고 비난할 여지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악관행의 유혹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는 현대사회를 이끄는 정책입안자들의 몫입니다. 이것을 알아줬으면 하는데 관심이나 있는지 솔직히 기대할 기분도 안 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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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안샤르베인
2017-08-09 20:56:08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칠 생각 안하는 마음바탕이라니 무시무시하네요. 예전에 유행했던 '난 오늘만 산다' 라는 말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SiteOwner
2017-08-09 22:41:02
그런 마음가짐에는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소를 잃었으니 외양간을 고칠 필요는 더욱 없다는 것이 있고, 어차피 잃은 소가 자기 것도 아니니 알 바가 아니라는 것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가 요즘의 전력수급관련 담론에서 "이미 공사중인 원자력발전소에 들인 비용은 매몰비용이니 아까워하지 말라" 하면서 공사 즉각중단을 주장하는 쪽에 닿고 있고, 후자의 경우가 막연하고 비과학적인 공포 내지는 진영논리로 다른 의견을 말살하려 드는 무책임한 조류에 닿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늘만 산다는 그런 마인드, 사실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의 대학가에 회자되던 담론 중에, 부자의 재산을 뺏으면 경제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실현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1회성의 약탈로 앞으로의 문제가 해결될 리도 없는데 그것이 계급투쟁의 최종단계라고 믿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말이 좋아 지성인의 전당이지, 그런 생각을 할 것 같으면 시정잡배와 다를 게 무엇이 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마키
2017-08-10 00:49:10
실제 삼풍백화점도 후에 정밀조사가 들어간 결과 나온 결론이 "도대체 어떻게 이따위 상태로 5년이나 버텼는지 모르겠다"였었다고 하니...또 심시티 같은 도시 경영 시뮬레이션을 할때도 체감적으로 전기 수도 등의 필수 시설은 도시의 요구량보다 어느정도 여유를 두는게 재난 상황이 발생하여 발전소가 파괴되는 등의 비상사태가 발생해도 빠르게 수습이 가능하고 말이죠.
정책은 내놓는다고 다가 아니고 그게 실생활에서 후에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하지만 그런 귀찮은 짓을 좋다고 할 사람이 없으니 이러고 있을지도요.
SiteOwner
2017-08-10 22:04:38
말씀하신 삼풍백화점의 경우는, 붕괴사고 직후에는 폭탄테러설이 상당히 유력하게 제기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건물이 그렇게 혼자 쉽게 무너질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정밀조사 결과 건물 자체가 워낙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상태가 엉망인 것이 알려지면서, 목전의 이익에 눈이 멀어버린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가 제대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그때뿐인가 봅니다. 사회인프라의 여유를 줄여서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하긴 몇년 뒤에는 자신들은 현직에 없을 것이니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발상일까요.
이럴 때마다, 제가 오피니언 리더가 아니라 재야의 소시민인 게 한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