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본래 경남도청은 진주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제시기때 부산으로 옮겨갔죠...사실 경남도청 이전관련으로도 할 얘기가 많지만 이건 뒤에 하도록 하고..... 도청 이전 반대운동에는 상당수의 일본인들이 참여했습니다. 이중엔 청수좌태랑(이름인 '청수'는 일본어론 키요미즈라 한다고 교수님께서 말하셨는데...알아보니 시미즈라고 보통 한다고...복잡하네요....)같이?한국인들 사이에서 규탄대회가 일어날 정도의?악명높은 일본인도 상당수 있었습니다.(잠시 청수좌태랑이란 자에 대해 조금 얘기하자면, 러일 전쟁 참전군인중 한명으로, 전쟁이?끝난뒤 백수로 일본에서 살아가다가 을사조약이후 삼천포에서 항구 종지기로 일하던 자였습니다.(그래서 별명이 '종지기 청수')그러다가?어쩌다가?진주로 건너와 목화사업에 발을 들이게 되어 떼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자가 저울눈을 속이는 부정행위를 했다는거죠. 그래서 한때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들중 '석정고효'( 교수님께서 일본식으론 '이시이'라는 이름이라 하시더군요. 성부분은 얘길 안하셔서 모르겠지만....)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이자는 시청반대운동에 참여하기도 하기도 했는데....이후 시청반대운동에 실패한것에 비통해하며 진주신사에서 천황에게 절한뒤 권총자살을 합니다. 이는 당시 상당히 이슈가 되었고, 심지어 이후 진주신사로 가는길에 그의 추모비가 세워졌을 정도입니다.(해방이후 진주신사와 함께 주민들에게 파괴됌.)
?
그런데, 이게 살짝 이상한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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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이전 반대운동의 실패를 비관하던 석정고효(石井高曉)는 1926년 10월 15일 새벽 1시에 진주신사에 배례한 후 도청 이전 반대운동 봉고문을 읽은 뒤 권총으로 자살하였다.(동아일보 1926년 10월 18일자 기사)......글쓴이가 만난 노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학교조합의 초대 관리자로서 일본인 거류민 사회의 유력자였던 석정은 일제 침략 초기에 진주에 이주하여 관청을 끼고 사업을 해서 크게 성공하였다. 그런데 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일이 제대로 되지않자 자살하였다는것이다. 승전이조(勝田伊助)(일본 언론인-인용자)도 도청이 이전하면서 그가 남강 치수 사업을 서둘러 벌이려고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
이렇듯이 당시 조선인들은 석정이 사업이 잘안되자 자살하면서 그 탓을 도청이전에 돌리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이는 시기상으로도 부합하는데, 진주에서 부산으로 경남도청이 이전된건 1924년 4월 1일입니다. 그러나 석정이 자살한건 1926년 10월 15일에 일로, 거진 2년 반이상이 지난 시기입니다. 굳이 도청이전때문에 자살을 할것이면 이전이 되고 한달이나 최소한 그해 안에 자살해야 이치에 맞겠지만, 이전된지 2년 반이나 지난 상황에서 자살하면서 그 이유를 도청 이전만으로 돌리기엔 무리가 있다는 점에서 이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뭐....석정의 사업실패가 도청이전으로 인한 진주의 쇠퇴에 어느정도 기초한단걸 봤을때 도청이전이 아예 이유가 아니진 않을겁니다. 다만 석정이 도청이전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느냐는 좀 의문이 남는게, 일제가 20개조 타협안(일신고보의 공립전환, 남강 치수사업 해결, 수리사업등....)을 내세우며 도청 이전을 검토할때 잽싸게 거기에 동조한것도 석정이나 다른 일본인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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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랑 별개로 석정이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란게 잘드러나는게....현재 남아있는 진주성은 내성이고, 외성이 또 따로 있었는데 이 외성에 성벽에 쓰인 벽돌들을 가지고 치수사업때 해자를 매우고 다녔다더군요(....) 교수님은 이걸 두고 엄청난 문화재 파괴라고 대놓고 까버렸을정도(....)
도시가 무너져 가는데, 나는 여전히 살아있구나!-1453, 콘스탄티노플에서. 유언.
https://en.wikipedia.org/wiki/Constantine_XI_Palaiologos-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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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SiteOwner
2017-10-19 17:52:45
진주 지역사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런 게 있었군요. 흥미롭게 읽어가고 있습니다.
신규사업에는 명암이 있기 마련이죠. 전반적으로는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싶지만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예상치 못하게 나올 수도 있는 법입니다. 예의 도청이전같은 큰 프로젝트가 아니라도, 단순히 도로 직선화 같은 사안조차도 전반적인 소요시간 단축이 달성가능하지만 의외로 버스정류장 이전으로 불편을 겪는 마을이 생겨나는 사안을 본 적이 있는 터라 이해관가 첨예했을 것은 예상됩니다.
성벽을 헐어서 공사용 자재로 유용한다든지 하는 것은 흔히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명치유신 이후 근대화 추진이나 중앙집권 강화 등을 위해서 기존의 성을 철거하는 사례가 흔히 있었는데, 진주성 외성 철거도 그러한 것의 연장선으로 보입니다.
콘스탄티노스XI
2017-10-21 13:02:23
아무래도 그건 그렇지만, 그거랑 별개로 아쉬운건 사실입니다...외성 성벽을 보존했으면 좋은 문화재가 되었을텐데....
마드리갈
2017-10-19 20:11:25
清水는 여러 독음이 있는데, 인명으로는 시미즈. 지명도 거의 시미즈가 일반적이지만 드물게 키요미즈, 쇼즈(しょうず)의 다른 표기가 있긴 해요. 키요미즈라고 읽는 경우는 교토의 사찰인 키요미즈데라(清水寺).
큰 사업에는 역시 이해관계가 많이 얽혀 있고, 20세기 전반만 하더라도 교통이 지금같이 좋지는 않다 보니 도청 이전과 같은 거대사업은 지금보다도 더 크게 명운을 좌우하는 일이었을 거예요. 게다가 목숨을 내던지는 것을 쉽게 생각했던 옛날이다 보니...여러모로 절체절명이었던 것일까요. 그런 생각이 드네요.
콘스탄티노스XI
2017-10-21 13:02:57
도청 이전사업이후 진주의 몰락과 부산의 부상은 더욱 가시화되니깐요...도청이전은 뒤에 더 얘기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