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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ember, it's Russian 3. 러시아 산업의 개성적 면모

마드리갈, 2018-04-18 16:31:42

조회 수
185

Remember, it's Russian 1. 서론 및 러시아와의 인연

Remember, it's Russian 2. 제정러시아의 선구자들


여러분이 들어보신 러시아의 기업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아마 바로 생각나는 게 거의 없을뿐만 아니라, 생각난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에너지, 중공업 관련 이외에는 없을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제정러시아 당시에는 자본주의적인 기반 자체가 성립하지 못했고, 소련시대에는 산업이 철저히 관영으로서 에너지 및 중공업 분야만 집중적으로 육성된데다 현재의 러시아 공화국 체제에서는 소련 붕괴 직후의 혼란기 이후 찾아온 석유나 가스 등의 천연자원의 국제가격의 급등의 혜택을 보기는 했지만 산업의 균형있는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보니 그러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의 산업을 마냥 폄하만 할 수 없는 게, 상당히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고, 그 잠재력이 지닌 고유의 강점 및 시사하는 분야가 적지도 않다 보니 러시아 산업의 개성적인 면모를 들여다 보는 것은 꽤 유의미하게 보여요. 그래서 이번에는 러시아의 산업에서 잘 나타나는 특징에 어떤 게 있는지 보기로 해요.


러시아 산업의 개성적인 면모 하면 저는 3가지를 거명하고 싶네요.

콤비나트, 설계국, 그리고 경험이 곧 기술로 이어지는 구조.


콤비나트(комбинат)라는 말은 상대적으로 낯설지 않은 어휘.

이 말은 기업 상호간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원료, 연료, 공업시설 등을 계획적으로 이은 기업집단을 말하는 것인데, 공업지역, 공업단지, 공장군(工場群) 등 여러 역어가 있어요. 게다가 유사한 개념으로, 지역생산복합체를 의미하는 컴플렉스(complex)도 있어요.

사실, 콤비나트 자체는 러시아만의 독특한 개념은 아니었고, 산업혁명의 주도국인 영국에서도 철광석과 석탄의 산지를 중심으로 제철공업이 발달하는 등의 유사한 형태가 생겨나고 있었어요. 그런데 왜 콤비나트가 러시아적인 개성이 되었을까요? 세계지도를 보신다면 바로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러시아의 광대한 국토는 산업발전에는 양날의 칼로 작용해요. 자원이 풍부한 이점이 있는 반면, 수송의 효율에 문제가 있어요. 국토의 상당부분이 냉대 및 한대지역이라서 수송이 계절의 영향을 특히 많이 받는데다, 인구가 많더라도 넓은 국토로 인해 인구밀도는 희박해서 교통네트워크를 갖추기에도 난점이 있어요. 게다가 원료의 상당부분은 제품생산공정에서 부피가 크게 줄어드는 것이 많아서 원료수송비용이 폭증하는 문제점도 안고 있어요. 콤비나트는 이에 대한 역발상으로, 원료산지에 인접한 지역에 관련업종의 공장을 집중적으로 건설하여 산업을 육성시키고 완제품을 인근한 지역으로 배송하는 방식으로, 소련에서 급거 확대된 방식.


소련의 항공우주산업 관련을 알게 되면 잘 등장하는 어휘에 설계국이라는 말이 있어요.

설계국이란 러시아어 Опытное конструкторское бюро의 역어로, 로마자 약자로는 OKB로도 쓰이고 있으며, 영어로는 Design Bureau로 통하고 있어요. 글자 그대로 설계국은 연구개발조직이고, 생산설비를 직접 보유하지는 않는 경우도 있어요.

소련시대의 유명 항공기 설계국으로서 현재도 존속중인 것에는 대표적으로 이런 것들이 있어요.

  • 미코얀-구레비치(통칭 미그) 설계국 - 산하에 소콜 공장 보유
  • 베리예프 설계국
  • 일류신 설계국
  • 먀시체프 설계국
  • 밀 설계국 - 산하에 밀 모스크바 헬리콥터공장을 보유
  • 카모프 설계국
  • 수호이 설계국 - 산하에 콤소몰스크 항공기제작협회, 노보시비르스크 항공기 제작협회 보유
  • 투폴레프 설계국 - 산하에 카잔 항공기공장 보유
  • 야코블레프 설계국 - 이르쿠츠크 항공기공장과 같이 이르쿠트 코퍼레이션 산하

게다가, 자체 개발품은 없지만 도급생산만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 또한 있어요. 보로네즈 항공기 제작협회는 일류신, 투폴레프 설계국이 설계한 기종은 물론, 우크라이나 키예프 소재 기업인 안토노프의 항공기도 생산하고 있어요. 노보로시스크 항공기 제작협회가 수호이 이외에도 및 안토노프의 항공기를 생산하고 있는 한편 밀 설계국이 설계한 헬리콥터의 상업생산은 자체보유 공장이 아닌 카잔 헬리콥터공장 및 울란우데 항공기공장에 위탁생산하고 있고, 자체보유 공장은 연구용 소량생산에 전담시키고 있는 등, 연구개발과 생산이 상하분리된 행태를 특히 잘 보이고 있어요. 게다가 항공기 완성품 뿐만 아니라, 항공기 엔진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게 여러 설계국이 개발한 제품을 도급생산하는 페름엔진공장 등의 사례도 존재해요.

물론 일본 도시바 반도체의 욧카이치 공장처럼 도시바 및 미국 웨스턴디지탈이 공동운영하거나, 미국 오하이오주의 리마전차공장처럼 정부 소유의 전략물자 생산공장을 민간기업에 위탁경영시키는 경우 등도 있지만, 러시아처럼 한 산업섹터 전반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고 연구 섹터와 생산 섹터를 사실상 상하분리의 형태로 운영하는 경우는 흔하지는 않아요.


특기할 사항의 세번째는 경험이 기술로 이어지는 구조.

이게 러시아의 무서운 점 중의 하나로, 경제논리 따위는 생각조차 안한다고 할 정도로 무식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마냥 무식하지만도 않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거든요.

이런 유명한 말이 있어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소련 전차인 T-34에 대해서는 "만들기 시작해서 그냥 많이 만들었다" 라고. 그런데 사실 그냥 많이 만든 게 아니라, 8만대 넘게 만들면서 생산현장에서 노우하우가 축적되고, 또한 당시 소련의 기술수준 및 품질관리가 높은 수준이 아니었지만 축적된 노우하우가 개량으로 이어져서 전장에서의 목표달성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데에서는 경외심까지 들기도 해요.

이러한 방식은 역시 항공우주산업 분야에도 이어졌어요.

MiG-15, 17, 19는 상당히 닮아 있는데 사실 이것은 연속적인 개발의 결과. MiG-17은 MiG-15의 최종완성판이 되었고, 그 MiG-17이 초음속기로 발전한 것이 MiG-19. 특히나 MiG-15는 알루미늄 토끼라는 별명을 얻을만큼 대량생산되어 공산권 국가에 보급되었어요. 게다가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비슷한 동체구조에 삼각익이 탑재된 MiG-21은 일단 소련에서만 10,000대 넘게 제조되었고, 중국, 인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면허생산된 것까지 합치면 13,000대는 너끈히 넘을 정도로 엄청난 생산수를 기록했어요. 또한, R-7 로켓 시리즈는 1957년 이래 계속 개량되며 누적 발사회수가 이미 1,800회를 넘게 기록하면서 신뢰성과 경제성이 입증된 우주발사체로, 경험이 기술로 이어진다는 말이 결코 빈 말이 아니며, 누적된 역량이 왜 중요한지를 현대사회에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이렇게 러시아 산업의 개성적인 면모를 콤비나트, 설계국, 그리고 경험이 곧 기술로 이어지는 구조의 세 측면에서 들여다 봤어요. 이렇게 역발상으로 무장하여, 북미, 서유럽, 동북아시아와는 다른 방향으로 산업을 발전시켰고, 떨어지는 기술수준으로도 목적을 그럭저럭 달성가능한데다 오히려 경험을 기술로 만들어 버리는 러시아의 저력은 모범답안이 아닐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얕볼 수는 없다는 것도 확실해졌어요.



다음 이야기는 러시아의 어두운 부분, 특히 인권 관련에 대한 러시아식 사고에 대해서 살펴 보겠어요.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4 댓글

마키

2018-04-18 23:36:07

콤비나트가 러시아어 였군요.


제게 친숙한 러시아 기업이라면 아무래도 밀리터리 오타쿠 노릇 하면서?들어서 배우고 본문 중에도 언급하신?미코얀-구레비치(미그), 일류신, 투폴레프, 카모프, 수호이 같은?설계국이 전부네요.


미국은 F-1 엔진이라는 희대의 괴물을 만드는 것으로 해결했지만 그럴 기술력이 없던 소련은?다수의 엔진을 하나로 묶은 클러스터 로켓으로 승부를 봤었죠. 달탐사 로켓 N1은 결국 구조의 불안전성 때문에 두번의 폭발사고로 생을 마감했지만 사촌인 R-7 로켓은 결과적으론 박리다매로 밀어붙여서 기술과 성능을 양립하기위해 온갖 애를 쓴?미국의 최첨단 하이 테크놀로지들과의 싸움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두었고 말이죠.

마드리갈

2018-04-19 19:45:40

콤비나트라는 말의 어원은 결합됨을 뜻하는 라틴어의 combinatus이지만, 이 어휘 자체는 소련시대에 고안되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러시아어예요. 재미있게도 일본의 법령 중에 콤비나트라는 어휘가 포함된 것이 있어요. 일례로, 1975년에 제정된 석유콤비나트등재해방지법(石油コンビナ?ト等災害防止法, 링크).


러시아 기업을 여럿 알고 있다면 대체로 마키님과 같이 항공우주관련 기업을 기억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죠. 실제로 그런 기업들 위주로 발전했기도 하니까요. 이런 것들 이외에는 주요 기업으로서는 에너지기업 가즈프롬 및 로스네프트, 철도차량 및 궤도차량 기업 우랄바곤자보드, 자동차 제조기업 라다, 질, 볼가, 아브토바즈, 아프토브라모스 등, 항공사 아에로플로트 및 볼가-드네프르 항공, 철도기업 러시아철도(RZD) 등을 대표적으로 거명할 수 있고, 각종 서비스업의 경우는 러시아 국내로 영업범위가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잘 알려지지 않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러시아식 해법이 굉장히 효과적인 경우가 있어요. 말씀하신 R-7 로켓은 물론이고, 군용기 관련으로는 MiG-25라는 사례도 있어요. 전자기술이 부족해서 진공관을 써야 했을만큼 낙후된 기술력에 기체구조재가 강철로 되어 있고 마하 2.8을 초과할 경우 엔진이 언제 터져 버릴지 예측불가능할 정도로 신뢰성이 나쁘긴 했지만, MiG-25는 오로지 고고도 고속정찰기 SR-71을 잡겠다는 단일목적기로 만들어져서 자유진영을 위협했다는 소기의 목적은 그럭저럭 달성했어요.

대왕고래

2018-04-22 23:46:20

의외로 러시아는 꽤 다양한 능력을 지닌 나라였네요. 다른 나라랑 비교하면 어떨까 싶은 느낌도 들어요. 특히 항공에 대해서 미국과 비교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어째 미국하면 항공에서 으뜸갈 거 같다는 (근거는 없는) 생각이 있거든요.

경험이 기술로 이어진다, T-34의 사례... 무식하게 많이 만든 것이 아니라 그만큼 잘 만들기 때문에 많이 만들었다는 것이군요. 베테랑의 나라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요? 생각해보면 논문을 많이 내는 사람들은 그냥 아무 논문이나 막 휘갈기는 게 아니라, 그 분야에서 그렇게 논문을 많이 낼 만큼 베테랑인 사람이죠. 그야말로 베테랑...

마드리갈

2018-04-23 00:30:56

전근대국가에서 대규모의 패권국으로 급부상한 국가는 러시아 이외에도 중국과 인도가 있고, 이 나라들도 역시 기초과학 및 공학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어요. 문제는 중국과 인도는 경험을 기술로 잇는 것에는 러시아만큼 뛰어나지 않다는 점. 제트엔진의 경우만 하더라도, 러시아가 영국의 제트엔진을 복제한 결과물과 중국이 러시아의 제트엔진을 복제한 것, 그리고 인도가 자체개발한 결과물은 판이하게 달라요. 물론 러시아의 경우는 1940년대 후반의 제품을 근간으로 했고 중국과 인도는 제트엔진 개발의 역사가 일천해서 단순비교에 난점은 있지만, 러시아는 미국이나 영국 제품보다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기술적 허용범위 내에서 자국의 수요를 감당할 수준으로 만들어 쓸 레벨은 되거든요. 중국이나 인도는 그게 되질 않아요. 중국의 WS-10 터보팬 엔진은 러시아의 AL-31 엔진의 데드카피인데 성능은 물론이고 신뢰성 문제로 악명이 높고, 인도의 카베리(Kaveri) 엔진은 결국 거금을 낭비한 꼴이 되어 프로젝트가 종료된 후 미국제 완제품 엔진을 구매하는 프로그램으로 넘어갔어요. 게다가 중국이든 인도든 그 실패가 기술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네요.


사실 미국이 항공분야에서 최고가 맞아요.

완성 항공기 및 항공기자재 관련으로 세계 유수의 기업을 거느리고 있어요. 당장 완성기에서는 보잉, 록히드 마틴, 노스롭 그루먼, 제네럴 다이내믹스, 벨, 시코르스키, 세스나, 파이퍼 등의 기업이 있고, 항공기자재에서는 엔진에 제네럴 일렉트릭, 프랫&휘트니, 윌리암스 인터내셔널, 하니웰 등의 기업이, 항공전자장비에는 록웰 콜린스, 노스롭 그루먼, 레이시온, 텔레다인, 커티스 라이트 등이 포진하고 있어요. 게다가 기업뿐만이 아니라 미국에는 결정적으로 FAA 인증이라는 무기가 있어요. FAA란 미국 연방항공국을 의미하는 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의 약자인데, 미국의 국내기관이기는 하지만 항공시장으로 세계최대인 미국에서의 운항 및 판매를 전제하는 항공기라면 이 기관에서 인증을 받아야 하다 보니 FAA 인증이 사실상의 국제표준인 셈이죠.

소련 해체 후 수많은 방산업체들이 폐업하거나 인수합병 등으로 적어지긴 했지만, 미국에서 군용항공기를 조달할 때에는 100대 단위면 소량주문이라고 할 정도였어요. B-47 스트라토제트 폭격기는 2,032대나 만들어졌고, 여전히 공중급유기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KC-135 스트라토탱커는 803대가 만들어져서 1965년에 생산이 종료되었지만 지금도 전세계에 400여대 이상이 현역으로 운용되고 있어요. 러시아가 특정 기종에서 대량생산을 한 것은 맞지만, 미국은 그 영역이 러시아보다 훨씬 넓기까지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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