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함도 있고, 이미 여기저기서 회자되고 검색하면 다 나올 정도인데다, 당사자들이 방영하지 말라면서 역으로 홍보해주는 격이기 때문에 프로그램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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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다닐 시절에 워낙 인상이 음침하고 혼자 다니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저한테는 사이비가 심심찮게 꼬였는데 참 가지가지였습니다.
?1. 어느 강의동 n층에 진을 치고 있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사람의 이름 한자로 사주 같은 걸 봐준다더니 제사로 유도함
?2. 분수대 근처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접근해서 도 이야기를 함
?3. 2인1조로 대학 근처 큰 도로변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번갈아 말하는 식으로 진을 빼놓으려 함
?4. 취업까지는 아니지만 아르바이트 비슷한 일자리를 주겠다는 명목으로 유도함
그 당시는 인간관계에 대해 아직 애착이 남아 있다보니 차마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했는데, 비슷한 일을 자주 겪으니까 '이 족속들은 예외로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사람의 선의를 악용하는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풀 이유가 없으니까요. 이것은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방어, 정당방위라고 생각합니다.
다단계 사기 같은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사기꾼 본인도 위험하지만 '선의를 품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더 위험해요. 특히나 처음부터 '내가 좋은 이야기를 해주면 듣고 감사하다고 여겨야지 나를 무시해?'라는 식으로 선민사상을 품거나 자기중심적인 성격이라면 더더욱 무섭습니다. 그런 부류는 사이비나 다단계가 아니어도 인간관계의 주도권을 뺏어가서 멋대로 악용할 가능성이 높거든요. 설령 옳은 소리만 하더라도 판단은 스스로가 할 일이지 결정권마저 뺏는 건 명백한 인권 침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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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머니께서 모 사이비 종교에 잠깐 발만 담가서 저까지 끌어들이려다 별로 이득(?)이 안 된다는 걸 깨닫자 바로 손절하신 적이 있으셔서, 저는 사이비 종교에 대해서 굉장히 싫어합니다. '종교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논픽션까지 써볼까 하다가 만 적도 있었죠. 이건 고등학교 때 국내 모 작가가 쓴 소설의 영향일지도 모릅니다.
제목은 아마 모스(moss, 당시 영어 선생님이 한글제목만 보고 moth라고 착각한 게 기억에 남네요), 즉 '이끼'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연히 윤태호 작가의 만화 '이끼'와는 다른 작품이지만 스토리에서 사이비 종교(혹은 그와 비슷한 세뇌)와 인간의 도구화가 큰 축을 담당한다는 것은 굉장히 비슷합니다. 아마 소재인 '이끼'의 특징, 돌이 구르지 못하게 자라나서 변화를 가로막는 것도 모자라 순식간에 여기저기로 뻗어나가며 쉽게 죽지도 않는다는 속성이 사이비 종교와 매우 흡사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용은 재미있다면 재미있고 진부하다면 진부할 수도 있는 펄프 픽션입니다. 유명 댄스 그룹의 팬클럽에 속한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는데 사실 그 댄스 그룹은 어느 악마를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의 앞잡이였고 납치당한 사람들은 악마숭배 의식의 제물로 희생되며 주인공은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그 종교집단과 맞서 싸운다는, 뭔가 미국 B급 공포영화에서 봤을 법한 내용이거든요. 실제로 주인공은 평범한 군필이 아니라 무슨 특수부대 출신이었나 해서 간부급을 손쉽게 제압하거나 크레모아 비슷한 물건으로 일당을 괴멸시키기도 하고... 그래도 당시 제 기준으로는 제법 재미있었던지라 결말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나중에 서브컬처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서 어렴풋이 알레이스터 크로울리로 대표되는 해외 사타니즘(Satanism)에 착안한 건가 싶었는데, 기억을 토대로 잘 검토해 보니 그냥 클리셰를 버무린 물건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종교집단의 아지트로 납치된 여성이 고대 페니키아(?) 어로 들리는 묘한 음악을 부르는 목소리가 자신이 열광하던 그 댄스 그룹 멤버들이란 사실을 알고 경악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건 영화 엑소시스트(1973)에서 악마로 나오는 파주주(메소포타미아 신화 중 바람의 신, 하지만 악마의 왕으로 더 유명합니다)에서 따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밖에 간부급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파장인지 뭔지를 집중시켜서 생각을 읽어내거나 세뇌시키는 기술은 무협물인가 싶기도 하고... 머리 비우고 보면 재미있지만 세세하게 따져보면 다소 기묘합니다. 다빈치 코드처럼 해당 문화에 대한 지식 같은 걸 담아내서 고증을 살렸다면 좋았겠지만 (후술하듯이) 1994년작이니 무리였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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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작년 말에 아베 신조가 통일교와 얽혔다는 이유로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죠. 국내에서는 암살까진 아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과 그 아비 최태민에게 농락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뉴스를 보니 본문 맨 처음에 언급한 그 프로그램에서 다룬 사이비 종교 세력이 방송국에도 손길을 뻗쳤다는 폭로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도 TV프로그램을 편성하는 PD와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통역한 통역가가 그렇다고 말이죠. 좀 다른 사안이긴 하지만 과거 방송국에서 소속을 불문하고 고인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었던 사건을 자주 저질렀던 걸 떠올려보면, 지상파가 어디까지 추락했는지 새삼 놀랍기도 합니다.
사이비 종교건, 기존 종교의 해악이건, 종교와 상관없는 사기극이건, 이것 하나만 명심하면 될 것 같습니다.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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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마드리갈
2023-03-14 22:35:12
사이비종교 신자들의 전도활동, 정말 짜증나죠.
그런데 인상이 어떻고를 떠나서 주로 혼자인 경우에 그런 자들이 많이 오더라구요. 최소한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 경우는 그렇지 않았던 것만 생각해도 그랬죠. 제 경우는 교내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채식주의자들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와서 채식을 하라고 헛소리를 하는 것도 겪어봤고, 외국인 학생들이 모금함을 들고 다니면서 돈을 내기를 요구하는데 같은 사람이 다른 날에 다른 이유로 모금하는 것도 봐서 한 소리 했더니 대답도 못하고 도망가고(대학 구내에서 모금하던 외국인 학생들 이야기 참조). 별 경우가 다 있었어요.
옛 작품 리뷰에 대해서는 코멘트를 분할할께요.
Lester
2023-03-15 02:23:49
사이비 종교는 역시 남을 이용해 먹는 건 사기꾼들하고 똑같아서, '만만한 사람'을 노리는 것도 똑같은가 봅니다.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들을 이용하는 게 괘씸한데, 이유야 어쨌든 해당 국가에 안 좋은 인식만 심어줄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한 사이비 종교에서는 한국말을 모르는 외국인에게 팻말을 쥐어주고 "이 대사 따라 읽으세요" 하고선 마치 세계 각국의 외국인 신자들이 문제의 종교집단의 수괴이자 '자칭' 재림예수를 찬양하는 것으로 왜곡하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이크 처리를 안 하고 말이죠. 그 외국인들이 진짜 신도라면 더 할 말은 없지만, 교리를 봤을 때 정말로 그럴지는 꽤 미지수라서...
마드리갈
2023-03-14 22:44:17
소개해 주신 소설은 확실히 미국의 B급 공포영화같은 느낌이 나네요.
문제의 그 댄스그룹은 악마숭배자였고 그 악마숭배의식의 제물에는 그 댄스그룹의 팬클럽 구성원이 충당되고. 확실히 기묘한 설정이면서 어딘가 모르게 기분나쁜 오한이 느껴지네요. 오늘 처방받아서 복용중인 약이 독한 전문의약품이라서 그런 기분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백마스킹을 해서 들리는 것으로 그렇게 소동이 일어난 1994년은 정말 혼란스러운 시기였다는 게 느껴지네요.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생각을 할 여지는 그렇게 없었던 것인지...
Lester
2023-03-15 02:34:44
라이트 노벨이 아니라서 순수하게 묘사만으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재미는 있더군요. 웃긴 사실은, 그래서 전업작가인가 싶었는데 검색을 해보니까 이런 기사가 떴습니다(링크). 요점은 곧 "해외에서 악마주의가 록이나 영화의 탈을 쓰고 넘어오고 있으니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 즉 작가인 최현규(불교 신자이자 동요 '노을'의 작곡가이기도 하더군요. 이 괴리감이란)는 실제로 그렇게 믿고서 '공포'를 토대로 소설을 썼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제가 이 책을 접했던 곳이 미션스쿨 고등학교의 도서관이었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일까요?
90년대는 아무래도 세기말이 코앞이라서 그런지 현실에서도 창작물에서도 다들 하나같이 심각했죠. 특히나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던 (가톨릭은 모르겠지만)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은 세상의 종말을 언급하는 '요한계시록'이 있어서인지 꽤나 절찬리(?)에 사용됐습니다. 다소 근본주의적인 기독교 집단에서는 '적그리스도' 운운하며 세상의 타락에 대해 경고하고, 반면 사이비 종교에서는 '내가 그 다시 온다던 예수다' 운운하며 새로운 집단을 만들어 나갔으니까요. 물론 뉴 밀레니엄은 아주 무미건조하게 지나갔지만 한 번 생겨난 집단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 비판적인 생각을 할 여지가 있었다면 애초에 그런 데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SiteOwner
2023-03-15 01:25:18
문명수준이 과거의 어느 시대보다도 발달해 있는 지금도 사이비종교가 판을 치고 있다는 게 비극입니다. 인간의 이성이라는 게 만만하게 볼 것도 아니지만 완전히 신뢰할만한 것도 아닌 게 그래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선의를 품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정말 위험합니다.
지금은 절연한 친척이 예전에 동생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친척은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학원을 차리는 것이 어떠냐 운운했습니다(빙퇴석같이 써 보는 신변사정 및 여러가지 논점 참조). 제가 그 친척에게 그따위 헛소리를 하지 말라고 하니까 돌아오는 말이 "네 동생이 남 가르치는 능력이 좋으니까 내가 애써 신경써 주는 건데 왜 역정이냐. 가족이 중요해, 집이 중요해?" 라는. 지금은 무관한 사람이라서 어떻게 살든 제 알 바는 아니지만 말이지요.
대학생 때 일입니다만, 어떤 예쁜 남학생으로부터 느꼈던 공포 제하의 글에 언급된 그 남학생인 S군 또한 사이비종교의 신도였습니다. 무엇이 사람을 잔인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큰 계기였지요. 결과론적인 이야기겠지만 그렇게 인연이 끊어진 게 천만다행이라는 결론을 내려야겠군요.
소개해 주신 작품에서 이런 것이 느껴집니다. 어쩌면 악마숭배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건 선이나 이상을 말하는 종교가 매력적이지 못하니까 그런 게 아니겠냐는. 하여튼 안되면 악마숭배를 탓하면 되고, 종교단체도 참 편리한 비즈니스인 듯합니다.
방송국 내에도 사이비종교의 신도가 있다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하긴 병원 내에도 그런 경우가 있어서 의료인력이 현장에서 적합한 치료방법을 고의로 쓰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방송국이라고 해서 그런 게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요. 끔찍합니다.
Lester
2023-03-15 02:41:15
그 예쁜 남학생은 무슨 데미안인가요. 데미안에 영지주의 성향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그리고 그 때문에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예쁜 남학생' 캐릭터인 나기사 카오루에게 영향을 줬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저라도 정말 섬뜩해질 것 같긴 합니다. 딱히 악당도 아닌 사람을 죽어 마땅하다고 깎아내리는 신자나 신이 올바를 리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위의 댓글에서도 적었지만 해당 소설은 정말로 작가가 악마주의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쓴 물건이더군요. 그리고 찾아보니까 악마주의라고 해서 다 사이비는 아니고 기성세대에게 저항하려고 종교의 형식만 빌리기만 했다는 '패러디 종교'라는 이론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기왕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신이라면 나에게 좀 더 매력적으로 와닿는 신을 섬기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듭니다. 좀 뭣한 비유지만 군대(및 훈련소)에서 무슨 간식을 주느냐에 따라 신앙이 휙휙 바뀌는 것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