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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교사법 - 누구를 위하여 법은 있는가

마드리갈, 2017-08-14 15:00:21

조회 수
134

제목의 유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의 1940년작 소설이자 그것에 기반한 동명의 1943년작 영화의 제목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2014년 전국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대참사인 세월호 침몰사건.
이것의 주원인으로는 세월호의 운용사였던 청해진해운을 빼놓을 수 없고 그 문제의 정점에는 사실상 그 청해진해운을 소유하고 좌지우지해 온 유병언이 있어요. 그 유병언은 도피 끝에 시신으로 발견되었음은 또한 주지의 사실이예요.
그런데, 행방이 묘연하였던 그의 마지막 자취를 발견하여 신고한 사람은 일절 보상을 받지 못하였고 정부를 상대로 보상금을 지급해 달라며 소송까지 냈지만 돌아온 것은 지방법원이 내린 원고패소판결.

2017년 8월 14일 연합뉴스 기사를 참고해 볼께요.
일단 재판부의 논리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이 귀결되고 있어요.
  1. 신고대상이 특정되거나 신고자가 신고대상을 인식했음을 전제할 것
  2. 발견된 시신의 신원확인은 수사/행정기관의 공이고 신고자가 기여한 것은 없음
  3. 1과 2를 종합했을 때 "유병언" 이 아닌 "변사자" 를 신고한 신고자에게 보상의무는 없음


대상을 특정하지 않았기에 신고자의 신고는 하등의 도움이 안 되었고 따라서 보상의무도 없다는 것인데...

일단은 그럴듯해 보이는데, 이 논지전개에는 몇 가지의 문제가 있어요.


첫째, 신고대상의 특정성 문제.

사실 누구든지 작정하고 변장할 경우에는 관계가 가깝거나 친한 사람들조차도 알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아요. 살아 있는 사람도 그런데 이미 죽어서 시신의 변형이나 부패 등이 현저히 진행된 경우에는 법의학자 등과 같이 해당 분야에 대해서 전문적인 식견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특정인이 지명수배대상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각종 생물학적 및 화학적 조사를 거쳐야 알 수 있을 따름이죠. 즉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지라도 변사체를 보고 그가 지명수배 도중에 사망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바로 판단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이런 것을 일반인에게 요구한다는 게 과연 타당하기나 할까요? 누군가가 범죄피해를 당했을 때 그 피해자의 부모에게 "처음부터 안 낳았으면 될 것 아닙니까?" 라고 반문하는 것과 별로 다르게 들리지 않는데 이게 제 심성 문제일까요?


둘째, 신고자의 기여분 부정 문제.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그 사건을 촉발하는 요인이 있어야만 해요. 총기를 예로 들자면, 총탄이 발사되어 총구 앞에 있는 사람이나 동물을 살상하거나 각종 물체를 부수기 위해서는 탄약이 장전되어 있고 그 뒤에 방아쇠를 당기던지, 총에 충격이 가해지던지, 아니면 불이 붙는다든지 등으로 탄약 속의 화약이 연소되어야 해요. 이러한 촉발요인이 없으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아요. 즉 총에 장전되지 않은 탄약이 스스로 날아가서 살상력을 발휘할 일은 없는 것이고, 신고자의 신고 또한 총에 탄약을 장전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요. 즉 변사자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었던 것에는 신고자의 신고가 필수불가결한 전단계였던 것이죠.

조금 삐딱하게 반문해 볼께요. 결과론적으로, 신고자가 신고하기 전에 도피중인 유병언이 검거되지 않았던 것 또한 엄연히 사실 아닌가요? 신고대상이 "유병언" 이 아니라 "변사체" 였다고 운운하는 자체가 치졸할 뿐만 아니라, 이 논리전개방식을 따를 경우 수사기관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않았다는 납득하기 힘든 결론으로 이어지는데, 이건 어떻게 봐야 할까요?


셋째, 앞으로의 사회풍조의 악화 문제.

확실하게 신고대상을 특정할 수도 없고 해봤자 이득도 얻지 못한다면 지명수배자라는 확증이 없으니 신고하지 않겠다는 풍조가 확산될 수 있어요. 그리고 이 방면에서 방관, 비협조, 수사기관에 모든 것을 떠넘기는 풍조 등이 확산되리라는 것 또한 명백하겠죠. 그렇게 행동하더라도 처벌받지는 않으니까 그 풍조를 깨기도 힘들 거예요. 그런데 그런 사회풍조가 조성되면 그게 어떤 이득이 있을까요? 정부는 현상금을 아낀 대신에 시민들의 협조는 버렸어요. 그리고 법의 권위 또한 존중되지 않겠죠. 어차피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면서 보상 같은 건 절대 주지 않을 것인데.


이 판결이 아직 지방법원 판결인 점이 그나마 불행중 다행일까요.

더 쓰고 싶은 말이 있긴 하지만 별로 그럴 기분도 나지 않네요. 고민한다고 뭐가 해결되어 주는 것도 아니니...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2 댓글

콘스탄티노스XI

2017-08-14 15:13:33

아직은 지방법원이니...좀더 보고 판단해야죠. 거의 무조건 상고가 이뤄질테니....

마드리갈

2017-08-14 15:26:51

아무래도 그렇겠죠.

같이 생각나는 판례 중에 이런 게 있어요. 장학사업에 쓰기 위해 기부한 재산에 세무서가 증여세를 부과하여 시작된 소송전. 결국 대법원 판결에서 고등법원 판결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는데...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궁금해지네요. 그리고 어떤 대법관들의 소수의견이 상당히 편협하게 보이기도 해요. 관련내용은 2017년 4월 20일 경향신문 기사에서 참조하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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