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창작물 또는 전재허가를 받은 기존의 작품을 게재할 수 있습니다.
“어, 왜 전화했는데?”
메이링은 아멜리와 몇 번 전화해 본 듯 익숙하게 대답한다.
“왜 미린학원 동아리 총연합회장이라고 하지 않고. 그거 때문에 전화한 거잖아.”
“줄여 부르기에는 그게 더 편하니까요. 그건 그렇고... 변호사님이 말한 그 요주의 인물들 중 몇 명이 모여서 동아리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 내용상으로는 문제가 없어서 승인은 날 것 같은데...”
“어...”
메이링은 아멜리의 말에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다시 말을 잇는다.
“나도 생각 같아서는 가서 뭐라도 좀 해 주고 싶지만, 요즘 내 코가 석 자인 상황이라 가서 뭘 해 주기도 힘들어. 그러니까, 꼭 필요한 일이 있을 때 연락해. 알겠지?”
“네...”
아멜리는 메이링의 말이 영 만족스럽지는 못한 건지,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는다. 그 말을 들으니 괜히 부담감이 커진다. 올해만 몇 번, 미린고 말고도 몇몇 다른 학교들에도 개입했던 바가 있다. 메이링 본인의 변호사 일도 바빴는데도 말이다.
“메이링 씨, 그런 건 급하게 할 필요 없어요.”
그 가운데에 앉은 남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메이링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이전부터 봐 온게 있는 건지 모를 표정을 하고서 말이다.
“저희 형님들도 늘 인내심을 갖고 매사에 임하라고 하시죠. 아무래도 제 성격이 형님들에 비하면 좀 많이 감정적인 것도 있기야 하겠지만, 에너지를 그렇게 많이 쏟을 일이 없는 일에 신경을 그렇게 곤두세우면 잘 될 일도 안 된다고 말이죠.”
“말씀 고맙군요, 피오 씨. 이사장님께는 여러모로 도움을 받고 있죠.”
메이링이 안도한 듯 숨을 크게 내쉬며 말하자, 피오라고 불린 그 긴 머리의 남자는 오히려 자신이 미안하다는 듯 말한다.
“하하하, 아니죠. 다 오래 살아와서 그런 경험이 쌓이는 거라고요.”
“그런... 걸까요?”
“물론, 경험만으로 대처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만...”
그리고 수요일 아침. 7시. 지온은 침대에서 뒤척거리다가, 눈을 부스스 뜨고, 이윽고 마치 몸에 어떤 에너지가 주입되기라도 한 듯 벌떡 일어난다. 눈을 뜬 지온의 눈앞에 메시지 하나가 보인다.
“어디 보자...”
[동아리 교류 주간 첫날]
[오늘의 교류 동아리는 무작위로 지정되니, 각 동아리 부장, 매니저, 총무들은 8시 10분까지 방송실에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메시지를 보니, 동아리 총연합회에서 일괄적으로 발송한 메시지인 듯하다.
“하... 오늘이 시작이라는 게 안 믿기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지온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온다. 지온 자신이 방송실에 가는 건 아니지만, 왜인지는 모르게, 긴장된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받은 건 치히로도 마찬가지다. 치히로는 벌써 눈을 뜬 지는 오래고, 아침식사까지 다 마치고 막 자기 방에 들어온 참이다.
“뭐야... 8시 10분까지 오라고? 그러면, 그 시간까지 우리 교류 상대도 모른단 말인가?”
치히로는 뭔가 자신이 품었던 기대하고는 달랐던 건지, 한숨을 푹 내쉰다.
“그건 그렇고, 왜 뽑기를 한다고 그러는 거야...”
사실, 내심 생각해 놓은 동아리는 따로 있다. 하지만 치히로가 아는 것만 20개가 넘는 동아리 중에 그 동아리가 딱 걸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 내 생각대로 안 되냐고. 왜!”
치히로는 서둘러 자기 집을 나선다.
그리고 점심시간, 미린초등학교 운동장이 보이는 정원. 거기 있는 벤치 중 하나에, 민과 친구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산책로 건너편에 홀로그램 하나를 띄워놓고 보고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건 다름아닌 <트리플 버스터즈>의 플레이 영상이다. 굳이 민과 친구들이 아니더라도 지나다니는 다른 사람들도 한 번씩 그 홀로그램 화면을 보고 지나간다.
한참 그걸 보다가, 민은 문득 뭔가 생각이 났는지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낸다. 메시지가 하나 와 있다. 윤진으로부터의 메시지로, 오전 10시쯤에 온 건데, 이때까지 보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 교류 행사는 ‘취미로 요리하는 모임’하고 하니까, 끝나자마자 취미로 요리하는 모임 동아리실로 와]
“어라? 당장 오늘부터라고는 했는데... 그럼 바로 하는 건가? 어디 부실 같은 데 모였다가 가는 게 아니라?”
그건 그렇고, 그 취미로 요리하는 모임이라는 곳은 민도 몇 번 들어는 봤다. 사람은 많지는 않아도 활성화가 좀 많이 되어 있어서 이런저런 활동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것 덕분에 학교 밖에서도 인기가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어, 어떻게 또 이렇게 만나게 되냐.”
민의 옆에서, 누군가가 나지막이 말한다. 이건 분명히 카즈다. 리카의 쌍둥이 동생 카즈 말이다. 만화부원이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요리 동아리라는 말은 듣지 못했던 터다.
“카즈, 너 요리 동아리였어?”
“어. 몰랐어?”
카즈는 오히려 되묻는다. 물론 민도 알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기는 하지만, 카즈가 지금 보이는 반응은 ‘의외’라는 것이다. 어떻게 민이 그런 것도 몰랐냐는 뜻에 더 가깝다.
“진짜, 몰랐던 거야?”
“어... 가 보면 알겠지. 어떤 식으로 활동을 하는지도 궁금했고.”
민은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지만, 카즈는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한다.
“한번 오늘 모임 때 보자고. 네가 뭘 기대했든 그 이상일 테니.”
“어... 그래.”
민은 그렇게 고개를 끄덕여 가며 대답한다. 그리고 다시 앞에 있는 홀로그램 영상 쪽으로 눈을 돌린다. 그런데, 왜인지는 모르게 이상하다. 카즈에게서 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 민에게 어떤 예감이 온다. 그것이 말해 주는 건 하나. 카즈에게 어떤 초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리카는 초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데, 카즈의 누나 리나는 또 있고, 형 히로는 모르겠고...
“에이, 있겠지, 뭐. 이따가 보여 주려나.”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마저 앞에 있는 홀로그램 영상을 본다. 불과 1분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새 한 마리가 민의 앞으로 날아드는 듯하더니 또다시 어디론가 날아가지만, 눈치채지는 못한다. 그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카즈는 슬며시 웃는다.
그리고 오후 2시 30분. 모든 수업이 끝나고, 지온은 만화부실로 막 가려는 길이다.
“어, 지온이냐?”
막 교실을 나와서 요리 동아리실로 가려던 지온의 눈앞에 나타난 건, 친구 ‘조나단’.
“웬일이야? 이렇게 큰소리로 인사를 다 하고.”
“뭐 별일이야 아닌데... 너네, 요리 동아리하고 교류 모임하는 거지?”
“네가 그건 또 어떻게 알고?”
“같이 가자고!”
“뭐야, 그렇다는 건 설마... 너 요리 동아리였던 거냐?”
“맞아!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아서 모르는 사람들이 좀 많기는 했지.”
한눈에 봐도 조나단은 어디서 힘깨나 쓸 인상이지, 요리를 즐긴다든가 하는 인상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또 말하는 걸 보니, 그 인상이 주방에서 힘쓰게 생겼다.
“나중에 네가 하는 음식이나 좀 얻어먹어야겠다.”
“에이, 무슨 주방장이라도 된 것처럼 이야기하지 말라고.”
그렇게 가던 길에, 지온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가 보인다. 한눈에 봐도 눈에 잘 띄는, 노란 후드티를 입은 치히로다. 어딘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한 채로 급히 뛰어가는 치히로는, 더욱 눈에 잘 띈다.
“뭐야, 저 선배님, 왜 저렇게 뛰어가는 거지? 어디 괴물이라도 나타난 건 아니겠지?”
지온이 제법 장난기 어린 듯 입을 열자, 조나단은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야, 설마 그러려고? 내가 저 선배님 잘 아는데, 모르기는 몰라도, 나중에 뭔가 크게 하나 할 것 같아. 네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선배님이 아니라고.”
“뭐야, 너 의외인데?”
지온은 놀랐는지 눈을 둥그렇게 뜬다.
“누가 봐도, 저 선배하고는 완전히 상극처럼 보이는데도?”
“뭐, 사람이란 건 겉만으로는 판단하기 힘든 법이니까.”
“그래...?”
그리고 약 10분 후, 요리 동아리방. 미린중학교 3층에 있고, 계단참 바로 옆에 있어서 사람들의 눈에 띄기 쉬운 위치에 있다. 평소라면 10명 남짓의 부원들이 모이기에 널찍하겠지만, 오늘은 만화부원들까지 들어와서 발 디딜 틈이 없다.
“오, 그래도 어떻게 다들 들어올 수 있네.”
요리 동아리 부원으로 보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확실히, 평소와는 다른 부실 내부가 이질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건 민 옆에 앉은 카즈도 마찬가지다.
“조나단 형의 말이 맞아. 여기 원래 대단히 넓은 곳인데.”
“그런데 다 들어왔잖아.”
“그러니까. 우리 부실이 이렇게 넓은 줄은 몰랐어.”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에도, 민은 주위의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낀다. 분명히 카즈가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짐작은 못 하겠다. 하지만 카즈가 어떤 초능력을 쓰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편 앞쪽에서는 윤진과 요리 동아리 총무가 뭔가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그리고 잠시 후, 윤진이 손뼉을 치며 부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자, 자, 여러분!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동아리 교류 행사 첫 번째 날이죠? 이렇게 ‘취미로 요리하는 모임’과 교류 행사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렇게 해서 모임을 진행하는 동안, 밖에서는 누군가가 슬며시 창 위로 머리를 내밀고 교류행사를 엿보고 있다.
“요리 동아리라고 한다면 우리하고도 잘 어울릴 텐데... 왜 엉뚱한 동아리가 걸려서 말이야! 분위기도 다 망치고!”
그렇게 푸념 섞인 말을 내뱉은 그 남학생은, 이윽고 마치 거기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도 된 듯,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난다.
“슬레인 녀석은 또 왜 이상하게 뽑기를 해 가지고 말이야!”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앞에는 이동식 조리대와 각종 조리도구, 소스 등이 준비되어 있다.
“왜, <신의 주방장> 만화에는 세상에 없던 요리를 만드는 내용이 있던데...”
문득 아이란이 그 말을 꺼내자, 옆에 앉은 나디아의 표정이 또 바뀐다.
“또 그 말 시작하려고 하는 거냐. 너는 하루라도 좀 가만히 있지 않는 날이...”
“물론 <신의 주방장>이 그렇고 그런 내용인 건 맞지만, 네가 상상하는 그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야!”
아이란은 바로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바로 그런 걸 지금 해 보자고 하려는 거지!”
“뭐? 하하하... 그게 말이나 될 거라고 생각해? 그건 만화잖아. 우리가 뭘 어떻게 한다고 해서 그런 ‘세상에 없던 요리’가 저절로 만들어진다든가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나디아가 막 그렇게 입을 뗀 바로 그때.
“저기, 선배님.”
만화부원들과 요리 동아리 부원들의 이목이 일제히 그쪽으로 집중된다. 민 역시도, 그 말이 들린 방향을 돌아본다. 그 말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카즈. 그리고 카즈는 매우 자신이 있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거, 제가 할 수 있겠는데요? 한번 해 볼까요?”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3-02-20 21:13:24
역시 요주의인물들의 행보는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드러나게 되네요.
그것을 아멜리가 포착했고 그건 다시 메이링으로 전달되고...하긴, 빌런들이 "나 빌런이다" 라고 광고하고 다니지는 않죠.
동아리 교류행사의 1일차는 이렇게 시작하네요. 일단 큰 일이 없다는 건 다행이지만.
그런데 카데노코지 일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자기중심적일까요. 리카는 자기 사심을 채우러 타인에게 코스프레를 강요한 적이 있었는데다 카즈는 자신이 요리동아리 소속이라는 것을 왜 몰랐냐고 반문에. 별로 가까이 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아요.
카즈가 가진 초능력은 혹시 자신의 의지대로 상황을 조성하는 계열일까요? 뽑기로 결정한다는데 그 결과가 카즈의 초능력으로 요리동아리 쪽에 사람들이 오도록 유도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시어하트어택
2023-02-26 21:52:25
맞습니다. 어지간히 간이 크지 않은 이상에야 빌런들은 자신을 숨기고 다니기 마련이니까요.
카즈가 갖고 있는 건 일종의 자존심일 겁니다. 일종의 '나 이런 거 잘 한다'를 자랑하고 싶은 심리겠죠.
SiteOwner
2023-03-09 23:11:31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군요. 역시 그들이 모이는데 이미 전력이 있는 그들이 그냥 모이기는 그러니 적당히 구실을 만들어서 표면상의 보통의 단체를 결성하여 모이는 게 안전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안전하면서도 동시에 위험합니다. 아멜리와 메이링처럼 그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렇게 표면상의 단체 결성은 스스로 독 안에 들어가는 쥐가 단단한 벽 덕분에 안전하다고 착각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세상에 없던 요리...이상한 게 튀어나올 것 같아서 영 그렇습니다. 기대는 안 됩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03-12 21:56:17
아무래도 저렇게 표면상으로는 멀쩡한 단체를 만드는 게 이득이겠죠. 물론 그런다고 해서 일종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있는가는 별론으로 치고 말이죠.
뭐, 괴식도 세상에 없던 요리를 만들어낸 것과 비슷한 경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