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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점으로 친구들과 같이 향하던 재림이 갑자기 자리를 이탈해서는 영상을 찍는 걸 보더니, 민은 ‘왜 저러느냐’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니, 매점을 가려다 말고 저러는 건 또 뭐래?”
민이 그렇게 말하자, 옆에서 보던 안톤이 민의 어깨를 짚으며 말한다.
“야, 놔둬. 저런 거 하는 애들은 나름대로 재미가 있겠지. 혹시 알아? 재림이가 언제 오디션 같은 데 나가서 인기남이 될지.”
재림은 일종의 ‘챌린지’를 하는 것 같다. 가만히 지켜보니, 앞에서 촬영하고 있는 고등학생의 지시에 맞춰서 이런저런 과장된 동작을 취하고 있다. 그 동작 중에는 요즘 방영 중인 인기 애니메이션 <도련님은 밀항중>에 나오는 주인공 ‘에드바르트’의 동작을 따라한 것도 있고, TV에서 화제가 되는, 논란 중인 배우 ‘우림’의 사과 영상을 따라한 것도 있다.
“저런 거 왜 하나 모르겠네.”
민은 혼자서 그렇게 중얼거리지만, 다른 친구들은 그러건 말건, 재림이 하는 그 과장된 동작을 구경하고 있다. 빠져나갈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몰래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야, 죄 지었어?”
누군가가 민을 불러세운다. 민을 붙잡은 건 같은 반의 유. 친한 친구이기는 하지만, 하필이면 이럴 때 민을 막아 세우니, 고마움보다는 왜인지 모를 언짢은 감정이 생겨난다. 그래서인지 민의 목소리도 마치 분화하려다 만 화산처럼 식어 버려서 어색하다.
“왜 잡아, 왜. 나 지금 도와줘도 모자랄 판에.”
“그게 아니고, 뭔가 알려 줄 게 있어서 온 거라고!”
“응? 뭔데?”
한편 그 시간, 예담의 감각은 더 이상해졌다.
“이제는 전혀 안 보이는데. 내 손바닥도!”
예담의 손바닥도 두 발처럼 점점 형태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절단된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아무런 감각도 없으면서, 단지 사라지고 있을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담은 공중에 둥둥 뜬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욱 확신이 든다. 예담에게 누군가 장난을 치고 있을 거라는 확신 말이다.
“누구냐! 얼른 나와라! 어떤 녀석이 장난을 치는 거야!”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 장본인이 순순히 나와줄 리가 없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번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흐흐흐...”
누군가가 예담의 말을 엿듣고 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는, 하나도 안 보인다. 산책로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중에 바로 예담에게 달려와서 도와줄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흐흐흐...”
그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또 들려온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오는 것같이 느껴진다. 그 장본인이 말이다. 예담의 등 뒤에는 식은땀까지 흐른다. 도대체 이 알 수 없는 공격자는 누구이고, 또 무슨 이유에서 이러는 건지,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다. 분명히, 이 학교 안에 범인은 있을 텐데...
“어떤 녀석이냐니까? 기분 나쁘게 장난이나 치고! 안 나오면...”
“흐흐흐... 안 나오면 뭐 어쩌려고? 내가 나오면 박수라도 치게?”
“이 자식을 아주 그냥...”
예담이 그렇게 말하자,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살짝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다. 하지만 아무 의미도 없다. 그냥 수풀 속에서 손 한번 흔들고 말 뿐이고, 누구의 손인지도 분간하기 힘들다.
“해 봐! 해 보라니까? 흐흐흐...”
“뭐야, 이제는 내 코도 사라지나? 어? 손가락은 어디 갔어?”
예담은 더욱 이상해지는 상황에 당황하는데...
그때 누군가가 예담의 몸을 강하게 밀쳐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순간적인 강한 밀쳐내는 힘에 예담은 산책로 밖으로 밀려난다.
“뭐야, 방금은 또 누군데! 아까부터 누가 자꾸 장난치냐고!”
그런데, 예담은 아까보다 더 놀란다. 조금 전만 해도 감각이 없어지고 사라져 가고 있던 두 다리와 손바닥이 예담에게 돌아와 있다.
“뭐야! 돌아왔잖아!”
“야, 그거 네가 그렇게 느끼는 거야! 네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렇게 느껴지는 거라고.”
예담을 그렇게 밀쳐낸 사람이 누군지, 예담도 안다. 옆 반의 ‘안젤로’라는 동급생인데, 파마한 머리에 두 눈이 가려 보이기도 해서 약간은 음침해 보이기는 해도, 여기저기 발을 좀 많이 들여놓다 보니 예담도 꽤 많이 이야기를 해 봤다.
“아니, 내 코하고 손이 다 사라지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그게 네가 환각에 넘어갔다는 증거라니까?”
“아니, 그게, 환각하고는 다르다고! 진짜로 감각도 없어지고, 거기에다가 진짜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고! 내가 아까 비슷한 일을 몇 번 당해 봐서 알아!”
“알긴 뭘 알아. 얼른 딴 데로 가. 여기서 더 있다가는 또 이상한 일 당할라.”
안젤로가 강권하듯 예담을 밀어내자, 예담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산책로를 벗어난다. 하지만, 계속 그 이상한 웃음소리는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야! 거기서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또 누군가가 예담의 옆으로 와서 속삭이듯 말한다. 예담이 돌아보니, 한나가 마침 축구를 구경하다 말고 옆을 지나가던 참이다.
“무슨 일이야?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아, 그럴 일이 있어. 어떤 녀석인지 장난이나 치고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한나는, 무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한다.
“에이, 누군지 몰라도 재수 없겠다, 참. 다른 거 하면서 잊어버려.”
한나가 이렇게 친절하게 나오니 예담은 일단 고맙기는 하지만, 상황이 너무 적절하니 한편으로는 머리를 흔들게 만든다.
“에이, 그냥 다 잊고 갈 길이나 갈까.”
그렇게 예담은 다시 자기 갈 길을 간다. 누군가가 기분 나쁜 웃음을 또다시 흘리는 것 같지만,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 것이겠거니 생각한다.
한편, 이곳은 미린초등학교와 미린중학교 사이에 있는 매점 앞. 한참 영상을 찍느라 정신이 팔려 있는 재림을 놔두고, 민과 다른 친구들끼리 매점에 온 참이다.
민이 아무리 봐도, 유는 무언가 좋은 걸 가져온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 은근히 흔들리는 눈과 찌푸린 듯한 표정, 그리고 거칠게 내쉬는 숨이, 어딘가 모르게 어둡기까지 하다. 그걸 보자, 민을 따라왔던 다른 친구들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유의 입을 일제히 바라보고 있다.
“왜 그러는데?”
“매점이 다 비었어. 누군가가 매점을 싹 털어가 버렸다니까?”
“응...?”
일순간, 민을 따라온 친구들뿐만 아니라, 거기 모여 있는 다른 동급생들까지, 유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다들 고개를 흔든다. 그중에 니키타는 절대 믿지 못하겠는지, 민을 제치고서 유의 앞으로 나와서, 마치 자신이 경찰이라도 되는 것처럼 따져 묻는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혹시 특이한 마케팅 때문에 일부러 그러는 거지?”
“전혀. 나는 이런 식으로는 마케팅하지 않아.”
“그럼 연막작전이냐?”
“내가 연막작전을 왜 쓰냐? 거짓말인 것 같으면 네가 직접 가 보라니까?”
유의 말에, 니키타는 못 믿겠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앞장서서 매점에 들어가 본다.
잠시 후.
“이런!”
실망과 놀라움, 그리고 분노가 섞인 한 마디를 내뱉고서, 니키타는 바로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금세 토라진 얼굴이 되어서는, 마치 금방 울음을 터뜨리기라도 할 것처럼 말한다.
“그 음료수가 없으면 이따가 나는 어떡하라고!”
그리고 니키타의 그 소리를 듣자마자, 유는 재빨리 자신이 들고 있던 손가방에서 뭔가를 꺼낸다. 거기에 손뼉까지 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자, 자! 여기 주목! 우리 ‘RZ식품’에서 새로 나온 거거든? ‘마레’가 이렇게 다양한 맛을 낼 줄은 몰랐지? 이거 다 무료라고, 무료! 이 기회에 한 번 먹어 봐야지?”
‘마레’란, 최근 인기를 끌기 시작한 말랑말랑한 디저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레시아인들에게서 수입만 했던 걸 최근에 직접 제조하기 시작하면서, 덩달아 인지도도 높아진 것이다. 아무튼, 유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매점 앞에 모여 있던 동급생들은 금세 민을 놔두고 유가 가져온 마레 꾸러미 앞에 모여든다. 그리고 공짜로 주는 신종 마레 과자를 받기 위해 자신의 앞에 선 친구들을 보며, 민에게 말한다.
“주의를 돌리려면 이렇게 해야지.”
“야, 아무리 그래도 이거 비싼 건데 막 뿌리고 다녀도 되냐?”
“이 정도는 해야지.”
하지만, 다른 친구들의 관심이 다들 마레로 돌려졌음에도, 니키타는 여전히 이 상황이 불만스러운 듯하다. 표정도 더욱 일그러졌다.
“뭐야, 마레는 음료수가 아니잖아. 나는 음료수가 마시고 싶다고. 왜 음료수가 없어.”
그리고 이 상황을 믿지 못하겠는지, 다시 한번 매점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친구들이 말려도 듣지 않고서, 기어이 니키타는 매점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러자마자...
“어?”
친구들 중 하나가, 방금 일어난 일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매점을 가리키며 말한다.
“야, 니키타 어디 갔어? 방금 매점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 보여!”
그리고 그 시간, 미린대 공학관 제3강의실.
“저 녀석이지...”
타마라는 자신의 세 칸 앞에 있는 남학생을 유심히 보고 있다. 리암은 그 문제의 남자와 듣는 수업이 달라서 어쩔 수 없이 함께하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타마라는 그 남자와 듣는 수업이 우연히 같아서 지켜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에이, 왜 그렇게 두리번거려...”
무언가 불안하기라도 한 건지, 문제의 그 남자는 시선을 한군데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린다. 앞에서 수업 중인 교수가 수업 중에 몇 번 눈치를 줌에도, 그는 개의치 않는 모양이다. 교수는 그냥 수업을 진행하기로 한다.
“자, 여러분, 여기를 보시면, 이 공식을 주목해 주시길.”
어느새, 화이트보드에는 계산식 하나가 쓰여 있다. 타마라에게는 처음 보는 종류의 계산식인데, 이제껏 배운 식들의 응용이기는 하지만, 머리가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이걸 또 줄줄 외우라 하겠군...”
그 말과도 같이, 타마라의 머리가 후끈거린다. 달달 외워야 할 공식을 생각하고 있자면, 그렇게 머리가 아픈 건 이상한 일도 아닐 터다.
그런데...
“잠깐만.”
타마라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이것은, 일반적인 ‘공식 외울 때’의 지끈거리는 머리가 아니다. 누군가가 이상한 짓을 벌이는 것이 분명하다는 직감이 머릿속에 든다. 그리고 그런 예감은 늘 틀리지 않았고 말이다.
‘설마, 그 녀석이 하는 짓인가?’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무엇을 하기도 힘들다. 수업 중에 의심되는 사람을 덮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걸 가만히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타마라 말고도, 주위의 몇 명의 학생들이 머리를 감싸는 게 보인다. 다들 타마라와 느끼는 게 같은 건지,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그리고 교수가 그 광경을 본다. 타마라와 잠깐 눈이 마주친다. 타마라는 질끈 눈을 감는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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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4-09-01 11:09:08
현실세계의 틱톡 챌린지같은 것은 정말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그런 거 따라하면 재미있는지. 예전에 포럼에서 다루었던 원칩 챌린지는 결국 도전자 중의 1명이었던 14세 소년이 죽는가 하면 미국의 대학가에서 유행하는 급조 조제주인 보그(BORG, Blackout Rage Gallon) 같은 것도 있고(원칩 챌린지의 참극 - 혐오스러운 이미지 주의!! 참조). 재림이 그런 걸 따라하는 부류라는 건 확실히 잘 알겠네요.
예담 주변을 배회하는 자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안젤로가 예담을 밀쳐낸 덕분에 더 큰 위기는 막을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어요. 그런데 다른 문제가 계속 발생하네요. 매점의 매대가 비어버린 것이라든지 니키타가 사라진 것이라든지, 한편 미린대에서는 타마라가 수상한 남자를 목격했고 그가 이상한 짓을 벌인다는 것도 감지했고...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쓸데없는 짓임은 분명하네요.
시어하트어택
2024-09-01 22:26:02
SNS가 등장하면서 저런 식의 챌린지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작중에서도 반영한 게 있습니다만, 저렇게 사고까지 치는 건 제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언젤로는 <만화부가 수상하다!>에 나왔던 그 안젤로가 맞는데, 성격상 저런 일이 생기면 참견할 가능성이 높기에 등장시켰습니다. 그리고 저런 자잘해 보이는 사건사고는, 일종의 '주의 끌기'일 수 있습니다.
SiteOwner
2024-09-01 16:29:17
정신없는 상황인데 하나가 해결되면 다른 게 터지니...
예담은 안젤로 덕분에 위기를 벗어났지만 여전히 기분나쁜 웃음소리가 그의 주변을 배회하고 있고, 매점은 비어버린 데다 매점으로 들어간 니키타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게 확실히 기분나쁘기 짝이 없습니다. 게다가 대학의 강의실이 의외로 취약하다는 것을 대학생 때에도 여러번 느꼈습니다. 예전에 쓴 글인 폴 포트를 롤모델로 삼던 어떤 혁명가 지망생에 등장하는 자의 강의실 난입 및 한총련 옹호연설같은 사태도 겪었는데, 제 경험사례에서는 최소한 교수가 들어오면 퇴장하기라도 했습니다. 그런데 타마라가 목격한 그 남자는 교수가 눈치를 줘도 요지부동이군요.
대사건은 이전에 작은 징후가 여러모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작종의 상황이 딱 들어맞는 듯합니다.
시어하트어택
2024-09-01 22:32:03
이번 회차에 나온 사건들이 모두 관련이 없어 보여도, 그 배후는 혼란상을 지켜보며 미소지을 겁니다. 그리고 머지 않아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과연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진행되어 봐야 알겠습니다만...